Cultura 연재-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1-둘이 예술하는 삶의 미술 by 강수미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둘이 예술 하는 삶의 미술

강수미(미학자, 미술비평가,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전시 전경. MAF 제공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전시 전경. MAF 제공




본업을 마친 후 화실이나 동호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미술 인구가 크게 늘었다인스타그램에서는 산뜻한 포스터 하나삽화 기법을 보여주는 짧은 편집영상 한 편으로도 큰 호응을 얻는다그래서일까국제적으로 이름 난 현대미술가의 신작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의 명화 모방까지 무수한 그림들(pictures)이 SNS에 넘쳐난다미술이 우리 사회에서 언제 또 이렇게 사랑받을까 싶게 관심이 높고이미지를 통한 의사소통도 효과적인 것 같다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처럼 뒤죽박죽된 오늘의 그림 난장에서 순도 높은 회화예술과 저렴한 시각이미지를 급을 따져 차별하고 싶은 심리들이 커져가는 것 같다어설픈 편견으로 누군가의 노력을 폄하하고갈라치기 할 목적으로 수준을 따지는 일은 모두를 빈곤하게 만든다그보다는 진지한 미술가든 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회화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서로의 미적 판단력을 키우는 길이 생산적이다그럼 무엇부터 생각해볼까?


회화란?

르네상스 시대의 저자 체사레 리파(Cesare Ripa)는 1593년 시각이미지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일종의 사전으로 도상학 Iconologia을 펴냈다초판은 라틴어 텍스트만 있었지만이후의 개정판에는 해설과 함께 도판들이 수록됐다특히 1644년 판본의 표지에는 와 회화를 승화한 두 여인이 책제목과 저자 이름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묘사돼있다둘 중 오른쪽이 여성명사 회화(La Pittura)’의 알레고리다말하자면 회화의 인간화인 셈이다도판을 자세히 보면 그녀의 눈은 먹구름 너머 밝은 천상을 향해있고입은 천으로 가려졌으며목에는 커다란 가면 목걸이가 무겁게 걸려있다여러 자루의 붓과 팔레트를 든 왼손은 감상자 쪽으로 내밀어져 있는 반면한 자루 붓을 꽉 쥔 오른손은 아래로 향해 지금 막 그림을 그리려는 모양새다단순해 보이지만그 흑백 판화 자체가 하나의 도상으로써 수십 세기 동안 서구 역사 속에서 다져진 회화의 미학적 본질을 함축한다요컨대 회화란 천부적 재능으로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며(여신의 모습을 한 화가구름 너머 총체성을 지향하는 눈), 자연을 모방하는(얼굴을 닮은 가면), 침묵의 공간예술(가린 입과 그림 벽)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리파가 도상학적으로 정리한 그 같은 회화의 정체성 중에서 특히 이차원 평면의 정적인 예술이고 재현을 핵심 목표로 한다는 점은 사실 동서고금을 관통한 예술이념이다심지어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처럼 지극히 다원화되고 복잡해진 창작 속에서도 수많은 미술가들이 여전히 바탕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회화의 성질이다때문에 오늘 여기서 우리가 어떤 새로운 회화예술과 실험적인 그림들에 주목한다 해도 그 미학적 전통을 간과할 수는 없다오히려 회화의 깊은 미술사적 규준에 연결돼 있으면서 어떻게 기존과는 다른 독창성을 발휘하는가가 비평적 기준이다.

 

둘의 둘둘의 하나두 사람과 한 전시

여기 동양화를 전공한 이진주 작가와 이정배 작가가 있다이 사실에서 우리는 그 둘이 앞서 말한 회화의 전통을 내면화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동서양 회화의 큰 틀은 다르지만 정적인 예술모방의 원리는 겹친다), 그들이 그릴 법한 동양화 유형을 예상할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잠깐두 미술가는 같은 대학같은 과 선후배로 만나 결혼했고현재 청소년기 남매를 둔 부부다그 긴 시간 동안 이진주 작가는 탁월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줄곧 화면에 인물과 세상의 단편들을 미스터리처럼 정교하게 시각화한 그림을 그려왔다반면 이정배 작가는 동양화의 산수화 정신에 근접하기 위해 오히려 조각사진가구 등 다양한 매체나 분야를 넘나들며 현실의 공간과 사물의 입체성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갔다이렇게 이진주와 이정배 작가는 공통의 배경과 공존의 조건반면 각자의 뚜렷한 예술 기질 및 목표를 유지하며 창작 활동을 해왔다두 미술가가 십 년이 훌쩍 넘는 동안 꾸준히 이인전을 열어온 점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특히 이들에게 이인전이 둘이 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둘이 하나일 수 있는 중요한 발표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멋지다그저 전시에 참여한 작가 숫자를 가리킬 수도 있는 그 평범한 전시 형태가 말이다.

이진주와 이정배가 복합문화공간 MAF에서 가진 네 번째 이인전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2022.2.9.~4.2)는 그 중 특별한 분기점이라고 평하고 싶다여느 감상자라면 전시장 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을 구별해 보는 일부터 할 것이다현대미술에서 팀이나 그룹을 이뤄 활동하는 이들의 공동창작협업작품 전시와는 달리 두 작가의 독립성이 유지된 채 공존해야 이인전이라는 형식에 부응할 테니까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이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은 고요한 분위기를 주도하며 대범한 구성으로 연출된 공간예술이다마치 소리 없는 연극무대를 마주하는 듯도 하고회화적으로 구성한 실내 디자인의 쇼룸을 거니는 듯도 해서 가벼운 혼란을 느낄 수 있다혹은 시각적으로 쓴 서정시 또는 서사문학을 읽는 듯도 하고입체와 반()입체의 조각/가구가 그림처럼 만든 선과 색채 속에서 마음을 놓고 거니는 듯도 하다하나의 전시 내부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선형의 목재 조각밝고 선명한 색조의 부조회화와 조각의 어느 경계쯤에 있어 보이는 가구그리고 무엇보다 비정형 화폭에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 들이 공존하는 덕분이다.

예컨대 이정배 작가가 흑단나무를 2cm 두께로 얇게 깎아 822cm 길이로 만든 <Wave> 조각과 노란색 <네 개의 달부조는 전시장 초입의 벽면을 횡단해 설치됨으로써 갤러리 공간의 단조로움을 깨면서 동시에 시적인 고요를 만들어냈다이진주 작가는 남편이 만든 비정형(원형은 물론 이차원 외곽선 그대로 자른 얼굴육각형칸막이 책장 모양 등)의 화폭에 데스마스크처럼 창백한 여자 얼굴반라인 채로 엎드린 여자의 등과 그 위의 수박껍질죽은 새나 가시 돋친 선인장을 소중한 듯 품은 앙상한 양손목줄과 입마개를 한 맹견식물들공구들쪽지리본 등을 세밀화 기법으로 묘사해냈다그렇게 이진주는 연관성 없어 보이는 존재와 사물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단순 모방하거나 스토리텔링처럼 구구절절 묘사하는 대신 기이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화면 질서로 형상화함으로써 재현을 넘어선 재현의 그림을 보여줬다하지만 이 두 작가의 상이한 시각언어와 질료기법과 주제로 구현된 각자의 작품들은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들어올 때에서 연접병렬교차의 디스플레이 방식을 통해 하나의 전시로 직조된다그것이 내가 앞서 썼듯이 대범한 구성으로 연출된 공간예술의 의미다이에 더해 감상자가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차원의 융합도 있다이진주 작가의 그림들에서는 유독 진하면서도 감미로운 색조가 배어나온다이는 아름다운 검정색(이정배 작가가 안료와 아교 등 미디움의 배합을 실험한 끝에 만들어낸 짙은 검정색, ‘JB블랙’ 또는 이정배블랙이라 명명)이 배경색이 된 화폭 안에 의미심장한 형상들이 그려져서다이정배 작가 입장에서 그 검정은 상대방/아내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자신의 감각일 것이다.

이처럼 이진주와 이정배두 미술가는 동서양 회화의 오래된 전통과 표현 역량에 발 딛고 선 채 현대미술의 다원성과 유연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각자의 작업을 이끌어왔다그렇기에 기꺼이 그 미술의 전문성과 높은 수준을 인정할 만하다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두 작가의 미술은 정통의 조형성과 이상적 미의식을 지향하면서도 둘이 함께 헤쳐 온 현실의 복잡한 삶을 솔직하게 작업과정으로 품으며 낳은 결정체인 것이다요컨대 한 집안의 남편아내아빠엄마지만 어느 한 쪽도 예술가로서의 자기 삶을 놓을 수 없고 상대방의 미술 또한 온전히 지탱시키며 닦아온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서로를 비춘다거기에는 무거운 가면을 목에 건 회화의 알레고리 대신 진짜 얼굴의 인간과 미술이 있다.


.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