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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웬디님이 아이스테시스 강연회에 대해 쓰신 후기 인사



지난 6월 8일 <강수미, 아이스테시스 사용법> 강연에 대한 매우 즐거운 후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http://cafe.naver.com/mhd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6666&

맨 밑에 사인된 책을 보고 글쓴이가 누군지 짐작했고, 새삼 당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홍대에서 '판화'를 전공하셨다고 해서 홍대 미대를 다닌 사람들이 공유하는 (좋든 싫든) 기억이 있어 서로 미소를 나눴답니다.
강연하던 당시 저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강연 현장 분위기, 그리고 강연을 듣는 분들의 입장이 후기에서 전해져와 제 마음이 조금 찌르르합니다.

마담 웬디[이상혁]님, 감사합니다.
신형철 문학비평가의 강연회가 아니라 제 강연회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하고,
과찬이겠지만, "동안"이라고 해주시고, 미학과 미술계에서의 제 '기능'에 대해 짚어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들을 찍어주셔서, 그래서 이렇게 좋은 기억이미지를 갖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하하.

* 쓰신 후기에 "저자 본인입니다. 이렇게 좋은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분이 계시니 저는 복 받은 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후기를 허락도 없이 먼저 복사해갑니다. "라고 쓰려했으나 댓글 다는 장치가 없어 무단으로 일단 퍼날라 놨습니다. 혹 이의제기하시면 사후에라도 만나 '용서해주십사' 말씀드리겠어요. :)


이하 마담 웬디님의 후기입니다.

 



책을 들춰보다 날개의 저자 약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대에 출강하신다 하기에 으레 서울대 출신이겠거니 했는데, 살펴보니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셨다. '회화'를 전공한 이가 '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도 또한 놀랄 일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내가 그 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하며 몸으로 부딪히고 느낀 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테시스 _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의 저자 강수미 선생님의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마침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강연도 서울 한자락에서 열렸다. 몹시 고민이 되었다. 발터 벤야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시간도 무척 기대가 되었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한 강연 역시 기대가 아니 될 수 없는 고대하던 행사였으니까. 행사가 있기 전날 밤, 시인 김민정이 문자를 보내왔다. "상혁, 형철 특강에 오니?"
나는 한날 한시에 열리는 젊고 뛰어난 두 평론가의 행사를 앞두고 고민하다, 결국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을 택했다. 시인 김민정에게 진 빚도 많으나, 이날은 글항아리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최현수 대리와의 채무를 청산해야했고, 주제 또한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강연은 대성황이었다. 앞서 소개한 사진은 막 행사가 시작되었을 때의 풍경이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 행사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0석의 강연장은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찼다. 열 몇명 쯤은 자리가 없어 바닥에 앉은 채 강연을 들었다. 그리고 참여한 분들의 열기 또한 대단하여, 넷북이나 맥북에어, 노트북 등을 펼치고 속기하듯 타이핑하는 이들이 많았고, 다이어리 등에 꼼꼼히 받아 적는 분들도 많았다.

 

모두가 진지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강수미 선생님은 아담한 체구에 동안이셨는데, 400여 개의 눈동자에서 뿜어지는 시선을 말과 손으로 잡아끌었다. 타다닥 탁탁, 토도독 톡톡,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고, 곳곳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번쩍였다. 

나 다니던 학교에는 '예술학과'가 있었다. 홍익대 2만 학생 중 2천여 명이 미대였다. 각 과는 독특한 개성과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판화과 1학년 실기실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술학과 강의실을 지나쳐야만 했는데, 예술학과에서는 압도적인 학구열이 느껴졌다. 내가 숫돌에 물을 발라 칼을 갈고 있을 때, 칼집을 돌돌돌 말아 수십 개의 칼을 지니고 다닐 때, 철을 그라인더로 갈아내 내 손에 맞는 칼을 만들어 낼 때, 예술학과 학우들은 지성을 칼처럼 갈아세웠다. 예술학과는 미대이되 미대가 아닌, 그런 분위기였다. 나는 미학을 좇는 이들에게는 일단 한수 접고 들어간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떠다니는 공기로 느꼈었기 때문이다.

  

 

강수미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저서 <아이스테시스>에 소개된 내용과 도판 이외에 많은 자료들을 두루 보여주시며 강연을 이어가셨다. 저녁 7시부터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 동안 쉬는 시간도 없었고,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열강을 이어갔다. 주몽은 알에서 태어나고, 예술은 당대의 모든 것으로부터 태어나고, 그녀 강수미는 미학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그 치열한 미학의 세계에 발을 들인 젊고 뛰어난 미학 연구자이자 미술 평론가를 지닌 우리의 미술계는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게 왜 축복인가 하면, 

  

굳이 비유하자면 미술평론은 현장의 일이다. 문학평론의 대상인 '텍스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평론가에게 가는 글과 독자에게 가는 글이 다르지 않다. 평론의 대상인 책은 동네 서점에서도, 온라인 서점을 통해 집에서도 받아 볼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동일한 텍스트가 제공된다.

 

그러나 미술평론은 작가의 작업실과 갤러리가 일터이자 유일한 평론의 공간이다. 어떤 이들은 그저 우편으로 받은 전시 카탈로그만을 훑어보고 말을 풀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진은 파인아트를 담아내지 못한다. 그림을 담은 액자와 조명까지도 예술의 연장이다. 나는 전시장에 가면 액자 프레임의 굵기와 폭과 색깔과 소재와 마감을 보고, 떨어지는 빛 또한 살핀다. 그리고 물감에 새겨진 붓, 붓의 털들의 쓸림과 방향과 붓질에 실린 힘과 화가의 팔뚝에 불거지는 힘줄을 떠올린다. 카탈로그는 착시다. 인쇄기에 들어간 잉크의 양에 따라 그림의 색은 바뀐다. 그 이전에 촬영한 사진의 색채에 따라 그림은 또 바뀐다.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은 덧입혀진 물감의 물성과 두께와 질감을 담아내지 못한다. 미술평론가는 현장에서, 갤러리에서, 작업실에서 느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평론가 강수미'가 미술계에 있어서는 축복이라 말하는 것이다. 수년 동안 회화에 묻혀 살았고, 캔버스 앞에서 붓을 잡아왔던 사람이 펜을 든 것이니까. 평론이라는 건 자칫하면 겉돌 수 있다. 온 몸과 마음으로 무의식에 가라앉을 때까지 천착한 주제를 화가는 손을 뻗어 화폭에 담는 것인데, 그려보지 않고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이 붓질의 의도는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화가들은 무의식에 가라앉을 정도로 치열한 사유의 과정은 생략한 채 "그냥 그렸어요."라고 답할 가능성이 많다.

 

한마디로 수천 장의 종이를 버린 끝에 한 편의 시를 쓴 시인에게 "이 단어를 쓴 의도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 수천 장의 종이와 수천 편의 습작은 생략된 채 "그냥 시를 썼어요."라고 말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뛰어난 평론가라면 그 '그냥'에 담긴 현장성과 고뇌를 단박에 알아채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현장'에 있어본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바로 '미학자, 미술평론가 강수미' 가 딱 그렇다. 이 긴 말들은 '강수미는 미술계에 축복이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혀 짧은 이의 설명이다.

 

발터 벤야민을 쉽게 말하는 게 가능할까? 일단 나는 불가라 본다. 이날의 강연, 쉽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남에게 다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알아듣지는 못했다. 남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그 지식은 내 것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강연을 하는 도중 강수미 선생님은 "아, 이것은 조금 어려운 내용인데..."라고 말을 잇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경청하였고 모든 것이 좋았으나, 단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 에어컨 작동이 제대로 되질 않아 강연장이 무척 더웠다. 이날은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코 앞까지 떨어지던 습한 날인데다가, 이백여 명이 한 공간에 있다 보니 서로의 열기가 서로를 데우기도 했다. 입구쪽은 그나마 나았으나, 사진을 찍기 위해 무대 앞쪽으로 다가섰을 때 훅, 하고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몇 번 셔터를 누르는 동안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강수미 선생님은, 그 더위의 정점인 자리에서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열정을 토해내며 강연을 이어갔다. 나는 그러질 못해 사진을 몇 장 찍고 도망치듯 뒤로 물러섰다.

 

스크린은 옛적의 작품들과 바로 지금, 현재의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빛은 진리나 시대를 비춰 마땅하나, 광고와 쇼윈도와 구매에 바쳐져 타락하기도 한다. 빛은, 그리고 예술은 타락하지 않고 순결을 지닌 채 세상을 밝게 비춰야한다.

 

엄지발가락, 도살장의 뒷골목. 끔찍함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들이 버젓이 현실을 걷는 21세기에선 평범할 수 있으나, 당대로서는 파격이었던 풍경들.

 

지침 없는 열강이 계속되었다.

 

동시대를 읽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동시대를 비평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흘러간 시대와 고인과 고인의 예술에 대하여서는 고인을 크게 욕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뜯고, 씹고, 해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를 비평한다는 것은 현재를 총체적으로 비평한다는 것이며, 관계와 위치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인으로서 지금 처한 관계와 위치를 걸고 비평의 날을 들이댄다는 것이기도 하다. 비평은 격려와 진주를 캐내는 혜안이 될 수도 있지만, 주례사가 될 수도 있다.

 

예술은 결국 현재를 사는 예술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담긴 것이므로, 붓으로 말하는 이념이자 철학이다. 예술을 읽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읽고 그 시대의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눈이 있어야한다. 그 눈을 지닌 자가 아직 눈뜨지 못한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지만, 눈을 밝히는 행위는 필요를 기본으로 한 미학자와 미술평론가의 필연이다. 

 

강연이 끝난 후 강렬한 모노드라마가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몸짓으로 시대를 말한다. 

 

모노드라마가 끝난 후 나올 때의 배우를 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사인회가 이어졌다. 나는 행사 시작 전 사인을 받았다. 내가 한참 후배라 말하니 전공을 묻는다. '판화과'라 답하였더니 '미대 3대 노가다 과', 를 알아보며 웃는다. 미대에는 3대 노가다과가 있었는데, 조소과, 도예과, 판화과가 그렇다. 미대 체육대회 때 줄다리기는 항상 세 과가 각축을 벌였다. 힘으로는 대학의 최고를 기록한 과들이다. 축구나 다른 종목은 지더라도, 저 세 과는 줄다리기만큼은 예술을 위한 노동으로 다져진 체력에 자부심과 자존심을 걸고 달려들었다. 전투였다. 줄다리기에서 1등을 못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술을 퍼마셨던 기억이 난다.

유치하지만 찬란하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 그녀는 무척이나 밝고 소탈하였다. 무척이나 동안이어서 나는 다시금 내 얼굴이 부끄러워졌다. 딱 '동안의 그녀' 또래의 형님과 같은 학번으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도 떠올랐다. 소 키우고 농사 짓고, 그러다 다방도 하고, 천성이 모질지 못해 도망간 다방 아가씨를 잡아들이지 않았던 그 형, 예술의 어디쯤에 가있을까.

 

아직 외장 플래시를 다루는 게 서툴다. 플래시를 터뜨렸는데도 흔들린 초점.

그러나 소녀 같은 모습이 좋아 보여 소개한다. 

 

바르고 반듯한 사인.

 

이것을 행사 후기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산만하게 쏘다녔고, 잠깐 예술을 생각했으며, 길게 옛일을 떠올렸고, 인간적인 저자의 모습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힘이 행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밖으로 나오니 천둥 번개가 코앞으로 떨어졌다. 비가 쏟아졌고, 나는 잠깐 망설였다. 전화로 물으니 카페에서 열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행사도 성황리에 끝났다 했다. 한쪽의 지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배가 부른 날이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빛이자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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