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의 편재, 비엔날레 예술의 향연 이후 by 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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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n: A Journal of Contemporary Art and Visual Culture, vol 2(2010.12)





예외의 편재, 비엔날레 예술의 향연 이후

 

 

강수미 (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시작: 예외의 편재와 비엔날레

대규모 자살폭탄테러, 성폭력, 총기 난사가 일상의 흔한 사건사고로 난무하는 바로 그 만큼, 사람들은 더욱 더 생활의 세부까지 보호/관리하는 치안 행정을 위해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공적 감시 체제 또는 국가 권력에 양도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또 최첨단 기술문명의 오작동과 자연의 천재지변이 더 이상 놀랍지도 않게, 심지어 지겨울 정도로 빈번히 동반 발생하는 지금, 우리는 눈부신 성능의 디지털 기기를 손에 든 채 속수무책으로 완전한 원시 상태에 떨어지는 모순의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예외적인 것’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평범한 일상이 되고, 자연과 문명의 재난 혹은 폭력이 도처에 만연하며 반복 강박을 일으키는 현재. 이것이 안타깝지만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이다. 삶이 이럴 때 사람들은 예외적인 것의 일상화, 편재, 습관성에 동화되는 동시에 그로부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 욕구는 이를테면 흔해빠진 예외 상태를 뛰어넘는 보다 강력한 억압기제에 대한 환상으로 흐른다. 또는 역방향으로, 가장 진부한 것들을 긍정하거나 찬미하면서 현실에 흘러넘치는 예외적인 것들의 부정성과 그에 대한 자신의 공포를 지워버리려는 성향으로 나아간다.

20세기 후반기 돌연 전 세계적으로 200여개가 넘는 각종 비엔날레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현상에 대해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은 비판적 의견이든 긍정적 평가든 여러 논거로 이야기해 왔다. 예컨대 어떤 비판론자는 비엔날레가 예술을 내세워 정작 관광수입 등 각종 잉여자본을 포획하려는 20세기 말 문화산업의 신상품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이 지역사회와 예술을 매개하는 미적 경험의 축제, 감성적 나눔의 장(場)이라고 긍정한다. 혹은 국제비엔날레란 모더니즘 시기까지 서구가 장악했던 미술의 헤게모니를 전 지구적으로 분할 ․ 산포하는 호혜적 글로벌리즘의 대표 문화 형식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엄청난 예산과 문화자본을 집행할 권리를 부여받은 소수의 전문가가 대중을 동원해 몽매주의의 스펙터클을 조장하는 새로운 권력의 무대라고 비난하는 식의 갑론을박을 해온 것이다.

이 모든 논의가 일견 타당하고, 일견 생산적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비엔날레가 서두에 쓴 바와 같이 예외가 일상이 된 동시대 삶의 ‘파생 모델’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혹은 그렇게 비상상태가 습관화 되면서 내외적으로 억압된 우리가 만들어낸 기벽/환상/욕망의 투사-역투사(projection-back projection)가 난마처럼 얽힌 장은 아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말하자면 막대한 비용과 인력, 다종다양한 지형지물과 예술(로 정의되는)사물/존재, 수만 수십만 명의 관람객, 무제한적인 기삿거리와 담론을 동원하는 거대 규모의 한시적 미술 이벤트인 비엔날레가 문화예술계의 예외적 행사로 각광받게 된 원인을 예외가 일상이 된 우리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비엔날레가 보다 첨단의, 보다 도발적인, 보다 새롭고 실험적인, 보다 예외적인 것들에 몰두하는 이유를, 그리고 이제 그 예외적인 예술 형식이 세계 도처에 편재하고 항상 식상한 것으로 여겨지는 원인을 그로부터 엮어낼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항상적 생산-소비 상태의 예술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전환기에 미술은 ‘예술대량소비(artistic mass consumption)’의 시대에서 ‘예술대량생산(artistic mass production)’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본다. 그는 이런 변화를 주도한 요인으로 “두 가지 근본적 발전”을 꼽는데, 첫째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배급하는 기술적 수단의 출현이다. 둘째는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이동(shift)했다는 점, 즉 무엇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정의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규칙이 변화했다는 것이다.1) 생산과 소비를 세기 별로 나누는 그로이스의 주장에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견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일단 미술 영역에서 그의 논리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예를 들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각종 이미지 생산과 배급의 도구/장치/환경, 즉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같은 커뮤니케이션 및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 그리고 이미지 제작과 공유의 테크닉이 특정 예술가 그룹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반과 구체적 개인들의 삶에 촘촘히 스며들어 활용되는 현 상황을 보라. 이를 둘러보건대, 지금이 예술(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이미지) 대량생산의 시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한 예술 실천의 한 지류가 되고,2) 1968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선언한 “저자(아티스트)의 죽음”과 “독자(감상자)의 탄생”이라는 논변을3) 후자가 아니라 오히려 전자가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에 차용하는 마당에, 예술을 분별하는 규칙이 임의적이거나 즉흥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생산이 없는 곳에서 소비가 일어날 수 없고, 소비가 없는 곳에서 생산은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경제 역학은 미술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우리는 예술가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들 각자가 기술적 수단에 힘입어 이미지를 자유롭게 생산하는 동시에, 과거 어느 때와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막대한 양으로 예술 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 무수한 사람들이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도큐멘타, 국제 아트 페어,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행사들을 기사로 다루는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현대미술의 진화된 생산방식과 결과물, 또는 구체적 이미지들을 경험한다. 혹은 그에 대해 꽤 널리 알고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일반인들 또한 예술가 못지않게 매체와 질료를 효과적으로 다루면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일상적으로 제작해내는 상황이 평행적으로 동행한다. 그러니 동시대에는 예술/이미지의 대량 생산만이 아니라 대량 소비가 상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정의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예술/비예술을 정의하는 규칙의 변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혹은 관심의 이동 또한 그로이스의 관점과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문맥상 그는 아티스트들이 수공업적 노동을 통해 작품을 제작했던 시대에 사람들이 이해했던 예술/비예술의 구분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지점, 즉 뒤샹의 레디메이드 이후 작가의 신체가 그/녀의 작품으로부터 소외되고, 창작과 그 결과물이 산업 생산 방식과 동일해진 지점을 문제시한다. 이러한 경향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축이 되면서 애초에 그것이 무엇이었던 간에 상황에 따라서, 조건만 맞는다면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자유방임의 시대가 도래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예술이 비예술로 완전히 해체되는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혹은 예술이 어떤 예술 제도적 자의식도 없이 일상 속에서, 평범한 삶의 수준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양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술이 기존에 비예술의 영역으로 치부된 곳을 더 열심히 탐색할수록, 덩달아 그것을 ‘예술’로 정당화하고 ‘예술계’로 안착시키려는 섬세한 기술(예컨대 비평담론, 전시형태, 컬렉션의 범위) 또한 심혈을 기울여 발명돼 왔기 때문이다. 또 왜냐하면 아티스트가 스스로의 권위를 버리고, 비가시적이 되고, 심지어 상징적 죽음을 선언하면 할수록, 그에 반비례하여 아티스트의 명성과 저작권(authorship)을 확고히 하고 널리 유통할 방안이 효과적으로 예술계 내부에서 고안돼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2년이나 3년, 혹은 5년에 한 번이 아니라, 거의 매년 소식을 접하거나 방문하게 되는 세계 도처의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도큐멘타, 그리고 아트 페어는 그 발명품 또는 고안물의 한 가지일 뿐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예술/비예술의 모호한 실체를 경험하고, 모든 것이 예술로 소비될 수 있는 지적 ․ 예술적 ․ 물리적 조건을 학습한다. 요컨대 현재는 그와 같은 예외적 규모와 성격의 수많은 미술 이벤트들을 통해서, 예술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맞물려 생활 권내에서 강고해지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최근의 인간 드라마

2010년 광주비엔날레는 《만인보(萬人譜, 10000 Lives)》를 주제로 내걸었다. 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술가와 일반 대중의 구별 없이 항상적으로 이미지를 대량 생산하고 소비하는 바로 지금 여기 동시대 인간 문화의 생태계를 고려하면 꽤 시의적이면서 의미심장하다. 올해 광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직을 수행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가 전시 타이틀을 통해 명시적 레퍼런스로 밝힌 시인 고은의 시집 『만인보』는, 문자 그대로 수많은 구체적 개인들에 대한 기억이미지를 25년간 30권의 시집에 총 4001편의 언어로 집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곧 전시 《만인보》가 시집 『만인보』와 유비적으로 공명하면서, 인간 군상과 그 인간들의 무수한 삶을 이미지로 집대성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물론 그 속에는 지금까지 인간의 덧없고 세속적인 삶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변천 또한 포함돼 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제8회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시의적인 이유이다. 지오니 감독은 전시 기획의 또 다른 레퍼런스로 레지 드브레(Régis Debray)의 매체철학서인 『이미지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e l'image』을 제시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는 전시가 미술이라는 제한된 울타리를 넘어 세상의 모든 이미지 일반, 그 이미지의 운명을 다룰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를테면 《만인보》는 현대미술의 향연장으로서 비엔날레 전시라는 외형을 하고, 그 안에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무한에 가깝게 생산된 이미지들의 삶과 죽음을 압축해 넣고자 한 것이다. 그 점에서 다시 그로이스의 표현을 차용해 말해보자면,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인간의 ‘예술대량생산’과 ‘예술대량소비’가 한 데 맞물려 운동하는 곳이자, 그런 예술/이미지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동시대의 시선으로 메타 차원에서 돌아보는 곳이다.

전시에 나온 예징루(Ye Jinglu)라는 한 중국인의 개인 앨범과 페터 피슐리 & 다비드 바이스(Peter Fischli & David Weiss)의 〈가시적인 세계(Visible World)〉가 단적인 예이다. 전자는 청나라 외교관의 수행원이었던 무명의 한 개인이 1901년부터 1968년 죽을 때까지 남의 손에 맡겨 찍은 자신의 초상사진 62장이고, 후자는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해온 현대미술가 두 사람이 1986년부터 2001년까지 여행하면서 찍은 엄청난 분량의 잡다한 사진 중 3천 장을 추려 거대한 직사각형 라이트박스에 설치한 현대미술품이다. 방금 내가 기술한 문장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두 더미의 사진들은 일반인 대(對) 예술가, 사적 기념사진 대 예술작품, 일상 행위 대 특별한 예술 활동, 우연적인 발견물 대 의식적인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쉽게 한 곳에 모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지오니는 《만인보》에서 이들을 공동 거주시키고, 의미의 맥락 속에 직조해 넣었다. 여기서 예술/비예술의 경계는 보다 불확실해지는 동시에 비엔날레라는 현대적 형식의 미술 이벤트가 가진 범위는 보다 확장된다. 우리는 그것을 모더니즘 미술이 금과옥조로 여겼던 ‘자기 지시적 예술(self-referential art)’을 뒤로 하고, 미술을 인류학과 이미지학에 개방하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감독이 제시한 레퍼런스 목록만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듯이, 《만인보》는 애초부터 현대미술의 최전방보다는 이미지의 전 영역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시도는 꽤 타당해 보인다. 미술사가 한스 벨팅(Hans Belti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이미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류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가 보려고 하는 바와 같이,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인류학적 정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이미지는 미술 작품 속에 살 수 있지만, 이미지가 곧 미술 작품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4)  따라서 우리는 지오니가 이미지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현대미술의 주요 테제를 연역해내고자 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 전시가 예술가이건 일반 대중이건 이미지를 대량 생산하고 소비하는 오늘날의 문화 메커니즘을 집약한 하나의 징후라고 평할 수도 있다.

이 전시는 예술과 비예술의 혼합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별 이미지들의 연대기나 지정학적 위치, 내재적 의미나 의도, 미술사나 미학적 평가 또한 예술 감독의 시선 아래서 과감하게 재구성한다. 가령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가 칼 안드레(Carl Andre)가 목재 블록으로 매우 단순하게 만든 미로 설치작품은, 중국작가 구더신(Gu Dexin)이 인간의 폭력성을 핏빛 중국 문자로 써서 고발한 메시지 성격이 강한 작품과 마치 원래부터 한 작품인 것처럼 전시됐다. 또 19세기 조선시대 장례 문화에서 유래한 ‘꼭두’ 인형 무더기와 서구의 가족애를 상징하는 ‘테디 베어’를 들고 찍은 이들의 3천여 장 사진이, 목 없는 인물 형태의 비석이 즐비한 중국인들의 무덤 풍경 사진과 1950년대 행동심리학자가 원숭이의 감정 변화를 실험하기 위해 만든 원숭이 인형을 재현한 현대미술가의 작품이 바로 옆에, 혹은 예술 감독의 기획 의도에 따라 비엔날레 관의 이곳저곳에 재배열됐다. 이에 대해 혹자는 대상에 대한 기획자의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해석과 구성을 비판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당사자의 말을 인용하면 “이 전시는 미술 작품들과 발견된 이미지들, 그리고 문화적 유물들을 결합”5) 한 것이니 그와 같은 비판이 전혀 근거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지오니는 그렇게 예상 가능한 비판을 무릅쓸 뿐 아니라, 심지어 비엔날레 전시장 전체를 강제 동선으로 만듦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큐레이토리얼 이외의 맥락으로 전시를 보는 일을 막았다. 여기서 우리는 전시 《만인보》의 모델이 인간의 이미지를 단순히 긁어모아 놓은 물류창고나 시기 순으로 줄 세우는 미술사 책 같은 것이 아니며, 동시에 사용자의 입장에서 어떤 하이퍼링크도 가능한 인터넷 공간과 비슷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보다 《만인보》는 비상한 감수성과 지성을 겸비한 한 명의 큐레이터/스크립터가 세심하게 공들여 짜깁기한 ‘인간 존재/이미지의 드라마’에 가깝다. 아주 장대하면서도 자폐적이고, 심미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하고, 사변적이며 감성적이고, 지적인 동시에 왜상(trauma)에 가까운 드라마.

 

 

바보야, 문제는 미술이 아니라 이미지와 미디어라고!

사실 여기 논의가 ‘미술계(art world)’를 근거로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위에 논한 모든 현상을 ‘예술’의 문제로 소급 적용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올해 한국의 세 도시에서 열린 세 개의 주요 비엔날레는 미술 그 자체보다는 ‘이미지’를 위한 무대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광주의 ‘광주비엔날레’, 서울의 ‘미디어 시티 서울’, 그리고 부산의 ‘부산비엔날레.’ 이 모두가 유미주의의 의미에서 미술(fine art)과 미술 작품에 한정되지 않고, 동시대 문화가 산출했거나 일상에서 파생된 이미지들을 다루는 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미지들에는 관념론 미학이 미술 작품으로 승인할 만큼 미적인 일상 사물도 포함되며, 반대로 미술계의 메커니즘 속에서 제작됐지만 오히려 매스미디어나 부박한 생활의 단편에 가까운 예술 작품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한국의 비엔날레는 그 스스로 이미지/예술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매개하는 일종의 ‘매스미디어’가 되었다고 봐도 좋다. 특히 이러한 속성은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 시티 서울을 교차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나는 관객의 입장에서, ‘2010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이 반드시 함께 봐야 할 전시라고 강조하고 싶다. 당연히 이 두 전시는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 열렸다는 공통점을 빼면, 전혀 별개의 국제 비엔날레이다. 즉 ‘광주’와 ‘서울’이라는 지역적 거리, ‘최전선의 현대미술 전반’과 ‘미디어 특정적’이라는 전시의 범위, ‘만인보’와 ‘신뢰(Trust)’라는 명백히 다른 주제, 뉴욕을 거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 총감독과 서울에 기반을 두고 아시아 및 유럽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한국 출신 총감독이라는 점 등을 볼 때, 꽤 다양한 측면에서 상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 시티 서울은 전시의 내용을 형성하는 정신구조(mentality)부터 동시대 예술에 대한 매체적 관심사 및 리서치 방법론 면에서, 일종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물론 양자는 상호 의논 혹은 상호 참조의 결과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관계성은 애초 예술 감독이나 전시 진행 주체의 의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2010년 광주비엔날레와 미디어 시티 서울의 관계성은 관객의 입장에서 지각할 수 있고, 감상자의 의식 속에서 인식되고 조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요컨대 그 관계성은 ‘이미지’와 ‘미디어’에 대한 새삼스러운 각성과 재구성이고, 동시에 지금 여기서 새로 쓰고, 새로 정위(定位)하는 미술의 이미지 속성과 매체능력(mediability)이다.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의 총감독직을 맡은 김선정은 오늘날을 “미디어가 지녀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나 가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상호간의 신뢰 즉 트러스트가 유효하지 않은” 사회로 규정한다. 그리고 전시 《Trust》를 “미디어로 인한 삶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사회 공동체 안에서 작동하는 사회도덕과 자본으로서 트러스트를 재고해 볼” 기회로 상정했다.6)  이러한 기획 의도는 ‘미디어’와 ‘예술’을 기본적으로 사회적 차원에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당연히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Trust》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사회적-정치적 비판의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발화한다. 또는 현실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나, 현재도 진행형인 각종 사회, 정치, 경제적 난제들을 기초 이미지 자료로 활용하면서 그것에 시각예술의 방법론으로 개입한 작품들이 주종을 이뤘다. 예컨대 캐서린 오피(Catherine Opie)는 2009년 1월 20일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 현장에서 주인공이 아닌 열외 된 이들,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을 만들어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회의 주변인에 불과한 이들의 초상사진을 찍어 작품으로 제시한다. 임민욱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줄기차게/은밀히 실행하고 있는 4대강 사업 현장과 버려진 한강 선착장, 유령 아파트 등을 떠돌며 퍼포먼스를 펼치고, 그것을 열감지 카메라로 기록해 우리의 세계/자연이 토건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체온을 가진 생명체 같은 것임을 붉은 열기가 감도는 영상을 통해 환기시킨다. 또 레바논 출신 왈리드 라드(Walid Raad)는 베이루트의 경찰이 해변의 시민들을 감시하느라 찍은 CCTV 영상을 이용해 비디오 아트 작품을 완성했고, 김범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익숙할 공중파 방송의 뉴스 영상을 재편집하고 앵커들의 말을 작가의 원고로 변조해서 작은 텔레비전 영상물을 만들었다. 이렇게 《Trust》는 ‘미디어 아트’를 구체적 사회의 삶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아트’라는 얇은 외피를 버리지 않은 채 현실 정치와 일상 공간의 미디어를 논평할 수 있었다. 또한 현실 이미지의 다양한 작용에 예술 이미지의 비판적 저항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거나 인용되는 우리의 삶이 신뢰할만한 것인지, 그 삶에서 미디어와 이미지는 믿음과 불신의 어느 수위를 달리고 있는지 묻는 일과 같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광주와 서울의 국제 비엔날레가 이미지와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으로 전시를 꾸린 배경은 어디 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시각문화/시각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과거 어느 시점보다 높고 일상화된 지금 여기 삶의 현상들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유원지에 가듯이 전시장을 찾으며,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듯이 미술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고,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을 쓰듯이 즉각적으로 미술을 응용하길 원하며, 패션 화보를 보듯이 예술의 이미지를 소비하려 든다. 이런 대중의 욕구와 지각 행위가 국제 비엔날레의 형식과 주제, 전시와 그를 둘러싼 태도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에 따라 첫째, 비엔날레 총감독 및 큐레이터들은 과거 최첨단과 전위(avant-garde)를 자처하는 미술과 담론, 현학적인 작품들에 집중했던 데서 벗어나, 보다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이슈와 친숙하면서도 흥미를 끌만큼은 낯선 이미지들을 대량으로 스크립트하고 재배치하는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또는 둘째, 이미지와 미디어의 역사적 ․ 사회적 ․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체적 인간 생활에서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두 번째의 방향에서 그로이스의 다음과 같은 진단은 정확하다. “오늘날, 미술 현장은 해방을 위한 프로젝트, 참여적 실천, 급진적인 정치적 태도의 장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파국과 혁명적 20세기에 대한 실망을 기억하는 장소이다.”7)

하지만 과연 어떤 관객이, 얼마나 많은 관객이 그로이스가 진단한 성격의 미술 현장, 미술의 공간을 반기며 찾고 있는가? 오히려 비엔날레를 찾는 대부분의 일반 관람객이 기대하는 것은 첫 번째 방향과 태도를 가지고 기획한 전시들이 아닌가? 왜냐하면 누구라고 구별할 것도 없이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해방’이라는 말이 아귀가 안 맞게 들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구속 시대를 살고 있으며, 온갖 지역의 온갖 테러와 분쟁, 폭력과 죽음의 소식을 다종다양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사회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어린이 성폭행이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의 뉴스거리가 될 때 “급진적인 정치적 태도” 같은 것은 우리 안에서 발생하지도 않으며, 갖추고 있어봐야 자신과 가족의 안녕만 위협하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국제적 큐레이터와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행정 자치 단체 또는 비엔날레 재단은 각종 이미지의 스펙터클 무대로 예술 현장을 전용한다. 혹은 더 심하게는 만화적 상상력의 해방 공간인양, 감각적 흥미를 자극하거나 선정적이고 기이한 것에 대한 우리의 은밀한 선호와 타협하는 작품들로 비엔날레 전시 공간을 채운다.

나는 《진화속의 삶(Living in Evolution)》이라는 원대한 주제를 내건 2010 부산비엔날레가 안타깝지만 바로 그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전시감독 아주마야 다카시(Azumaya Takashi)는 본전시를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와 인류의 지적 진화에 관한 고찰을 내포한 작품”, 그리고 “문명화된 도시 및 사회적 공간 속에서 관계를 형성해 가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유인원과 직립 보행하는 인간을 투명 비닐 위에 드로잉 한 설치작품이 “인간의 존재와 인류의 지적 진화”를 고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일본 만화 <20세기 소년들>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공상과학 캐릭터나 조형물을 두고, “문명화된 도시” 속 “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순진하지 않은가? 물론 여기서 예를 든 부산비엔날레 출품작들 자체가 저평가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수많은 작품들을 끌어다가 《진화속의 삶》이라는 과장된 문맥으로 삽입, 재배치하는 큐레이토리얼의 전횡이다. 거기에 덧붙여 개별 작품의 미적 실체와 큐레이터의 해석 사이에서 발생한 메울 길 없는 간극이 문제이다. 이를테면 관객은 분명 몇 몇 작품 앞에서 특정 감각을 자극 받는 경험을 하는데, 기획자는 짐짓 유사(pseudo) 과학자나 인문학자의 의식으로 그런 작품을 봐야 하는 것처럼 전시를 가장해 놓은 것이다.

 

 

결론: 무의식적 시각주의와 이미지의 응시를 경계하며

이와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가 올해 광주비엔날레에도, 미디어 시티 서울 전시에도 있다. 광주비엔날레든, 미디어 시티 서울이든 출품작들의 압도적인 다수가 사진과 비디오이다. 이들 매체는 그 자체가 이미지를 대량으로 손쉽게 생산하고, 다른 형식과 의미로 재생산-유통 가능한(reproducibility-communicatability) 매체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어떤 대상을 가시화하기에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상이 가진 고유성이나 그 대상이 속해있는 독자적인 문맥을 탈각, 전용, 왜곡, 이동 그리고 다른 맥락으로 각색하기에도 매우 용이한 매체들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앞서 소개했던, 미디어 시티 서울의 한 참여 작가가 레바논 경찰의 대(對) 시민 감찰용 CCTV 영상을 전용해, 바로 그 시각 자료로 행정 권력의 불법성을 되먹임(feed-back)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매체의 가변성과 전용의 효과를 우리는 ‘전시 전체 수준’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만인보》라는 커다란 이미지 모자이크 전시 안에 들어와 있는 미술작품들(드로잉, 유화, 조각, 개념미술, 키치미술 등등)과 역사의 파편적 이미지들(한국의 꼭두, 중국의 묘비,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의 죄수 증명사진, 미국 9. 11 테러를 기사화한 신문들 등등)을 다시 보라. 또는 대중 미디어 공간을 부유하는 이미지들(광고, 영화간판, 타블로 잡지, 인터넷 사진과 동영상 등등)과 사적 삶의 이미지들(개인 앨범, 개인 컬렉션, 여행 사진 등등)을 다시 떠올려보라. 그것들은 애초 각각의 상이한 영역에서 상이한 목적으로 제작됐거나 출현했으며, 그것들의 배후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역사적 ․ 지리적 ․ 문화적 ․ 정서적 ․ 개인사적 등등의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보》는 그 유보할 수도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개별체들을 하나의 매끈한 공간, 즉 학문적으로 논리정연해 보이고 미학적으로 크게 공감이 가는 강제 동선의 비엔날레 전시로 녹여냈다. 감상자인 우리는 거기서 개별 이미지들의 정체를 궁금해 할 여유도 이유도 없이, 대량으로 방출된 재생산 이미지들의 시각적 파도를 탈 수 있을 뿐이다. 미디어 시티 서울의 《Trust》에서도 이와 비슷하면서 감상자의 반응 면에서 조금 다른 양상이 감지된다. 이 전시는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정치적 비판 성향이 강한 사진과 영상작품들을 다수 제시했다. 관객인 우리는 그 작품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아랍권의 내전 상황을, 유럽의 시민사회 내부에서 점증하는 중국 경제 성장에 대한 두려움을, 다인종 ․ 다민족 국가 미국이 여전히 앓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디아스포라 문제를 가시적으로 접한다. 그러나 왜 우리는 그렇게 이미지를 보는가? 그것이 다만 우리 앞에 다종다양하게, 흥미롭게, 전시물로서 제시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인류학자 요하네스 파비안(Johannes Fabian)은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시각 기호를 찾으려는 우리의 분류학적 충동을 “시각주의(visualism)”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문화 또는 사회를 시각화하는 능력”이다.8) 시각주의를 통해서 모더니즘 시기까지 사람들은 주체와 타자, 흑인과 백인, 주인공과 주변인, 서양과 동양, 원시와 문명, 심지어 평화와 갈등, 억압과 왜상 같은 비가시적인 영역들까지 섬세하고 정교하게 분류해왔다. 현재의 우리는 사진과 영상이 이 분류법에 가장 탁월한 도구라는 사실을 딱히 연구 목적을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빈번히 논하고 있으며, 사실 동시대는 과거의 시각(중심)주의(ocularcentrism)에 대한 반성과 극복을 매우 다각도로 실행해 보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한국의 유력한 세 비엔날레를 기획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에게는 아마도 이 문제가 크게 지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전시는 전 세계의 미디어 권력을,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글로벌 문화 자본의 식민화를, 중동의 정치적 분쟁을 여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예외 상태가 일상이 된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 더미 중 하나인 것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현실 미디어의 작용에 불신을 표하는 비디오 아트 작품이, 그 자신 하나의 ‘매스미디어’로서 기능하는 국제 비엔날레의 시각주의에 동원된다. 이미지의 정치적 권능을 반성하는 작품이, 강력한 기획의도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국제 비엔날레의 ‘이미지 서사극’에서 모자이크 조각 역할을 한다.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고, 딜레마다. 하지만 광주, 서울, 부산의 대규모 국제 비엔날레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은 그들 스스로를 부지불식간에 의식이 깨어있으며 동시에 글로벌 심미성에 대한 판단력(칸트의 의미에서)과 이성을 가진 주체로 간주했을 것이다. 따라서 전시의 관건은 매우 중립적이거나 평면적인 차원에서 ‘이미지의 응시(gaze)’를, ‘미디어의 역사와 현재’를, ‘진화된 인간의 삶’을 시각화하는 데 달려있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놀랍게도 현재의 우리는 과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식민 정책이, 20세기 초중반 인종차별주의와 타자에 대한 주체의 동일시가 당연시됐던 역사의 오점과 조우했다. 물론 단순히 조우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선진국가의 개인인 동시에 이방인이자 주변부 사람들이고, 권리의 주재자이자 억압된 이들이라는 양가적이고 혼란스러운 자기 정체 속에서 문제적 과거와 마주쳤다는 얘기이다.

주)
1) Boris Groys, “Marx After Duchamp, or The Artist's Two Bodies”, in: e-flux journal #19(October, 2010), p. 1.

2) 큐레이터 부리오(Nicolas Bourriaud) 는 “현대미술의 정치적 토대”를 “우리의 양식을 구성하는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모든 체계를 침식하는 제스처”에서 찾는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제외하더라도, 부리오와 같은 입장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동시대 미술의 주요 양상이 예술/비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Nicolas Bourriaud, “Precarious Constructions, Answer to Jacques Ranciere on Art and Politics” in: http://www.skor.nl/article-4416-nl.html?lang=en.

3) cf. Roland Barthes, “The Death of Author”, 김희영 역,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서울: 동문선, 1997, pp. 27-35.

4) Hans Belting, “Toward an Anthropology of the Image”, in: Anthropologies of Art, Mariët Westermann (ed.), Massachusetts: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2005, p. 42.

5) Massimiliano Gioni, “만인보 10000 Lives”, 2010 광주비엔날레 도록, 광주: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2010, p. 428.
6) 김선정, “미디어 시티 서울”, 2010 미디어 시티 서울 도록,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2010, p. 20.

7) Boris Groys, “Marx After Duchamp, or The Artist's Two Bodies”, p. 2.

8) Johannes Fabian, Time and the Other: How Anthropology Makes Its Objec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p. 106.



수록: 광주비엔날레 noon(vol.2), 20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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