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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주의, 경제위기 구할 새로운 대안인가? andere Motiv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탈성장’주의, 경제위기 구할 새로운 대안인가?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99

"어떤 탈성장 옹호자들은 현재의 위기야말로 그들의 대의를 관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확신한다. 예전에 작가 드니 드 루주몽이 주창했던 ‘재난의 교육학’을 옹호하는 라투슈는 은행가 프랑수아 파르탕의 저서 제목을 인용하며 “위기가 악화되기를” 바란다.(4) “마침내 위기가 도래했다. 인류는 냉정을 되찾을 기회를 잡은 것이다.”
(...) 그렇다면 탈성장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어떤 것일까? 아리에스는 탈성장이 생산지상주의를 뒤흔들 수 있는 ‘키워드’라고 말한다. 셰네는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 단어의 잠재력을 찬양한다. 그러나 탈성장주의의 최대 약점은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아무런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정태균형’(靜態均衡) 사회에서 단순한 생산 감소를 주장하는 ‘성장 반대론자’는 없다. 이는 빈곤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여전히 탈성장 테제는 전성기 사회주의처럼 호소력이 강한 긍정적인 정치적 정의가 부족하다. 코셰는 “집단적 상상의 세계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탄한다. “어떻게 더 적은 생산량으로 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코셰는 “어떤 유토피아가 필요할까?”라고 자문한다.
(...) 마지막으로 탈성장 논쟁에서 암암리에 드러나는 것은 ‘좋은 삶’이라는 철학적 문제다. 기술 진보의 동학(動學)이 주도하는 경제 발전을 민주적 타협의 논리가 대체하는 것이다."



덧글

  • 박대환 2009/08/30 21:27 # 삭제 답글

    코셰라는 사람의 말 속에 이미 그 자신이 넘지 못하는 한계가 들어 있음을 문득 발견했습니다. 다시 한 번 써 보자면, "집단적 상상의 세계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를 지칭하는 것인데, 정확한 세 구문, 즉 '집단적 상상의 세계'와 '새로운 이야기'와 '만들어 내기' 이 세부분에 모두 걸고 넘어갈만한 거리들이 있어 보입니다.

    집단적 상상의 세계 ↔ 개인적 현실 천착
    새로운 이야기 ↔ 본성 찾기
    만들어 내기 ↔ 있던 것 회복하기

    등과 같이 말입니다. 무척 말꼬리잡고 늘어지는 듯 하고 또 너무 상황을 딱 양분해서 가르는 인상도 있지만, 윗 글을 읽고 떠오르는 관념을 말설임없이 표현해 보니 저렇게 됩디다. ㅎㅎㅎ.
    어쩌면, 같은 지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또 어쩌면, 역사 자체를 일종의 발전체로 여기는 서양식 사고와 왕정(王政)에서 민주(民主)로 한 차례 큰 개벽이 일어났다고 보는 한국식(동양식?) 역사관의 상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動學 이라고 한자로까지 써 주셨는데도 저는 그것을 東學 이라 여긴 바람에, 마지막 문장에서 회오리가 일어 나는 것 같았답니다.^^.

    (답니다...라는 종결사는 성당 다녀 오는 길에 '페미니즘 언어학의 이해'라는 책에서 몇 자 읽고 난 남자가 자기도 모르게 순화된 바람에 쓰게된 말임을 고백합니다.)
  • 강수미 2009/08/31 11:48 #

    제게 '탈성장' 담론은, 이렇게 표현해서 좀 미안하지만 '반쪽짜리' 논의로 보입니다. 이제까지 인류가 '성장-진보' 일색의 문명을 구축해왔는데, 거기에다가 '탈성장주의'를 내세운다는 것은 아주 좋게 봐도 '변증법의 반(anti) 명제' 역할은 할 지 몰라도, 궁극적인 답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어떤 대안이든 모색이든 큰 답변을 내지 못하고 '총체적 무능력'과 '겉으로만 멋진(chic) 태만'을 읊조려온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이후의 논자들이 던지는 '탈성장' 담론은, 제 짧은 생각으로는 자기 내부의 모순 해결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 기사에서 탈성장주의자들이 갈팡질팡하듯이.

    '답니다'란 표현이 여성적 언어 습관인가요? 전 금시초문이어서. --?
  • 필동기자 2009/08/31 00:36 # 삭제 답글

    좀 상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린성장이 가장 계몽적인 탈성장운동이 아닐지...

    혹자는 뭐 지구온난화가 가장 큰 거짓말일지도 모르다고 그러던데
    거짓말이더라도 그린성장은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ps.르몽드디플 레이아웃도 세련되서 자주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요ㅎ
  • 강수미 2009/08/31 11:59 #

    '지구온난화', '생태 파괴' 문제는 현실이고,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심각한 당면 현안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탈성장 담론을 부르짖는 이들(예컨대 생태주의자들)이나 '그린 성장' 또는 '지속 가능 발전'을 대안처럼 내놓은 이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사 본문에서도 우리가 읽어낼 수 있듯이, 그들 사이에서도, 그 자신들의 이론 내부에서도 갈팡질팡하고, 상충하면서 모순을 보이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는 것이죠.
    그리고 가령 다음과 같은 얘기는 정말 넌센스에다가 시대착오적입니다. :
    인용 1. 코셰는 “신생아는 파리~뉴욕을 620번 왕복하는 것과 맞먹는 환경 비용을 유발”할 것이니 셋째 아이 출산부터 가족 수당 총액을 감액하자고.
    인용 2. 탈성장 옹호자들 중에 자신이 바라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명시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2002년 셰네는 이를 시도한 바 있다. “건전한 경제에서 항공 운송, 내연기관 차량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자전거, 돛단배, 기차, 동물이 끄는 마차로 대체될 것”이다. 또한 “대형마트가 사라지고 동네 상점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며 지역 특산물이 싼 공산품을 대체할 것”이다.
  • 필동기자 2009/09/04 01:04 # 삭제

    인용까지 신경써주셨군요 ^^ 마치 탈성장 담론의 기수들은 단지 반체제적인 생각에 환경문제 등을 거들먹 거리는 것으로 그들의
    의견에 힘을 더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왜 반체제적일까요? 아마도 분노??? 자신을 향한 분노가 아닌 타인을 향한
    분노가 점점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생태파괴는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또한 인간의 기준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어짜피 우주에서 이질적인 지구라는 존재안에 또 이질적인 인간일터인데 그로 인한 환경파괴 또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것또한 자연스러운 것 아닐지...단지 원초적인 인구보존의 본능으로 인간에게 유리한 환경을
    유지시키고 싶은 게 아닐까요. 반면에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닐것이라는 증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의심은 가네요.

  • 박대환 2009/08/31 17:52 # 삭제 답글

    셰네가 말하는 미래는, 탈성장주의자들이 제시하는 비전이라기 보다 화석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의 세상을 그려 놓은 것이 불과해 보입니다. 기름이 없으니 당장 인력이나 자연력으로 움직이는 차량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것들로는 대량수송에 한계가 있으니 상품시장은 지역화되겠죠. 강수미님께서 여기시는대로 제게도 그들의 이야기는 넌센스네요. 자신들의 사회적 입장에서 무언가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서, 딱히 할 말은 없고 그렇다고 입다물수는 없어 부랴부랴 내어 놓은 이야기들 같습니다.

    기존의 시스템 리더(?)들은 그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에너지,정보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방법대로는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없다고 여기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데 혈안입니다. 이 거대 시스템을 앞에 두고 어떤 새로운 시스템 유발을 시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총체적' 운동이라는 생각입니다. '복잡계'에 대한 인식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하구요.

    정치권력-과학-공학-기술-경제 이들의 암묵적 커넥션이 만약 기존 시스템 유지를 위한 대안 마련에 어떤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안티테제 진영은 20세기때 보다 더 뒤로 밀려 나 앉을 듯 싶습니다.

    (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유연한 표현들 쓰며 살짝 불편해 하는 남자들 아마 꽤 많을걸요? 물론, 그러면서도 안그렇다고 발 빼 버리면 그만인 것인...)
  • 강수미 2009/09/03 13:00 #

    동의합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셰네의 주장은 지구의 자원이 고갈된 상황에 대한 예견적 그림이 아니라, "바라는 사회"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시대착오-퇴행적이지요. 셰네 같은 이에게 미래에 대한 답이 없다면, 침묵하면서 현실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은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설픈 동화를 쓸 것이 아니라. ^^

    "탈성장 옹호자들 중에 자신이 바라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명시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2002년 셰네는 이를 시도한 바 있다.(9) “건전한 경제에서 항공 운송, 내연기관 차량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자전거, 돛단배, 기차, 동물이 끄는 마차로 대체될 것”이다. 또한 “대형마트가 사라지고 동네 상점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며 지역 특산물이 싼 공산품을 대체할 것”이다. 모든 탈성장 이론가들이 과거 외국으로 이전된 생산기지의 재복귀를 주장하고, 또 많은 이들이 각 지역 통화의 창설을 주창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 정도까지 앞서가는 것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 박대환 2009/09/03 18:24 # 삭제 답글

    직접 인용까지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2002년도라면, 미국 IT버블마져 붕괴되고 이제 금융자본이 더이상 빌붙어 증식할 숙주를 찾지 못하고 Financial Engineering이 제시하는 Risk Zero 의 이상을 쫓아 미친듯이 자기증식 시작할 무렵이군요.

    탈성장 옹호자들 (그 때도 이런 명칭이 붙었었는지 모르겠지만)이, 그런 현상을 감지하고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에 큰 압박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뉘앙스는 이렇습니다. 한 번 100년 살아 보니까 이 길이 아닌가봐! 이제 시간의 태엽을 제국주의시대 이전으로 돌려 놓고 거기서 부터 다시 시작하자.

    요즘 저는 민주통합시민행동과, 시민주권모임(가칭)의 움직임을 틈틈이 쫒아 다니며 관찰하는 중입니다.^^
  • 강수미 2009/09/04 12:37 # 답글

    to: 박대환님. "한 번 100년 살아보니까 이 길이 아닌가봐!"를 읽고, 인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반대를 이루는 정체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어쩌면 '현재(modo)' 인류는 미래 인류의 실험용 몰모트일 수도 있습니다. 갈 길을 몰라 끊임없이 헤매야하는 이들이 반복하는 시행착오의 희생자로서. 다른 한편, 현재 인류는 미래 인류의 폭군일 수 있습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행한 오만과 독선, 과오와 실패를 후대 인류에게 강요하는 지배자로서.

    to: 필동기자님. 저도 님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을 우리의 관점과 규모, 인식 체계 아래서 바라보니 '생태 파괴'니 '멸종'이니 '지구 위기'니 떠드는 것은 아닌가? 자연이 정말 그런 상태에 있는지 과연 인간(의 과학, 이성)이 알 수 있나? 혹시 인간은 자신이 우주만물로서의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고서, 그런 인식 아래서 '자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의 끝에는 반드시 우리 인간이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하는 거대한 질서, 절대적 원리와 체계로 보면 '인간과 지금 여기의 세계'는 한 조각 밖에 안 될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싫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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