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11 칼럼 '기타'의 존재 의미 art und weise


모두 잘 지내시죠? 요즘 전 6/2 한국미학예술학회 논문으로 여유가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1일자 칼럼을 이제야 전하니 말입니다.
아무쪼록 즐독해주시길 :-)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5/h20120510210218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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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의 집 바깥으로: 서도호 리움 전시 리뷰 art und weise




* 작품-전시 설치 이미지는 삼성 리움 미술관 웹사이트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단독자의 집 바깥으로

 

지금 여기 삶에서 집은 누군가에게는 싫어도 타인과 등을 맞대고 자야 할 고시원의 비좁은 쪽방일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전문 경비업체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쾌적하고 윤택한 사생활을 구가하는 주상복합아파트 중 하나일 것이고. 극단적인 경우 노숙자에게는 거리 한 모퉁이가, 수조원의 자산가에게는 세계 곳곳이 그/녀의 집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시대의 집은 글로벌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고, 양극화된 빈부의 경험적 조건이다. 거기서는 프루스트(M. Proust)가 물에 띄우면 부풀어 오르는 일본 종이접기 조각에 빗대 묘사한 개인의 ‘무의지적인 기억(involuntary memory)’이 형성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개인적 기억의 원천으로서 경험이 완전히 말살되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그런 식의 집에 대한 경험이 자본의 모습을 하고 폐색될 뿐이지.

그런데 서도호의 리움미술관 개인전 <집 속의 집 (Home within Home)>에서 우리는 이중으로 위와 같은 현실과는 차원이 다른 집들을 대면한다. 한편으로 그 ‘미술작품-집’은 수공예로 만들어져 완벽하게 아름다운 외피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은 생활의 때가 묻어있지 않고, 묻을 수도 없다. 다른 한편, 작품의 집들이 모두 서도호가 살았던 다양한 양식의 집에 얽힌 경험을 기반으로 하되, 작가의 세밀한 기억, 개별화된 지각방식,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사적 상상력을 통해 재형상화 됐다는 점에서 <집 속의 집>은 현실로부터 떨어진 층위에 존재한다. 그 거리감 또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한국전통문화의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연결 지을 수 있는 바느질의 수공성과 한옥 건축술의 장인기질, 옥색 비단(은조사)의 우아함과 조선시대 건축물의 단아함이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한다. 말하자면 천을 바느질해서 옷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게도 집을 짓는 예외적 건축술, 거주의 실용성이 아니라 특정 양식의 집을 둘러싼 미적 태도와 정조를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둔 표현술이 서도호의 작품-집을 ‘현실에는 부재하는 곳(utopia)’으로 만드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유토피아(작품-집)가 한 예술가 개인의 지극히 구체적인 성장 과정으로부터 꾸준히 구축돼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모순되지만 그 구체성이 우리가 흔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말하는 리얼리티보다는 외적 현실과는 단절된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적 세계로 단독의 유토피아를 짓고

서도호의 미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한국 근현대 동양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산정(山丁) 서세옥의 자제라는 점, 그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부친이 1970년대 중반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연경당의 사랑채를 본떠 성북동에 지은 한옥에 살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대체로 이런 유의 이야기는 독자의 궁금증을 충족시켜주기는 하지만, 한 작가의 작가론 또는 작품론에서 예술적 분석을 방해하는 지엽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서도호의 경우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차치하더라도, 이 작가가 성장기를 어디서 보냈는가는 매우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 그 사실이 서도호의 미술이 출발한 경험과 기억의 원천부터 오늘 여기 놓인 작품의 시각적 표현방식까지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1999년 L.A의 한국문화센터에서 처음 전시된 <서울 집/L.A 집>을 필두로 <투영>,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베를린 집>, <별똥별>, <청사진>,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 <서울 집/서울 집>, <집 속의 집>, <문 (Gate)>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서도호 집-작품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 혹은 그것들이 반복적으로 회귀하는 지점이 바로 이 작가의 근원적 경험 세계로서 한옥/집이기 때문이다. 그런 삶의 경험을 제삼자가 적확하고 간단하게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서도호의 미술에 대한 비평의 문맥에서 중시할 부분은 첫째, 그 한옥에서의 삶이 이 작가에게 여타 또래 작가들의 문화적 감수성내지는 심미적 태도와는 다른 미적 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 요컨대 그의 집이 당시 한국 도시 근대화 과정에서 개조한 양옥집들로 넘쳐났던 성북동의 단독자로 존재한 것처럼, 서도호의 미학도 그 한옥에 한정된 삶을 원천으로 단독자화된 것이다. 둘째, 서도호는 집을 떠나 미국에서의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비로소 고국의 집, 즉 경험의 근원이자 미학적 원천으로서 성북동 한옥이 자기 내부에 구축했고 현재도 위력을 발휘하는 특수한 성질을 객관화하고 작품 형식으로 외부화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서도호의 일련의 작품-집들이 과거에 대한 현재적 재구성, 상실한 것에 대한 이미지-환영의 복구, 고정될 수 없는 삶에 대한 조형적 반응이라는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소망이미지의 유포리아

위에 예시한 작업 중 합성수지 등을 질료로 써서 견고한 형질을 한 <별똥별>과 <집 속의 집>, 영상 매체를 채용한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와 <문>을 제외하고 서도호의 모든 작품-집은 온전히 천(비단 또는 폴리에스터)을 바느질해서 만든 집이다. 그리고 예시 중 <뉴욕 웨스트 ...>, <베를린 집>, <청사진>을 제외하고는 작품-집의 직접적 모델이 전부 작가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서울의 한옥 집이다. 여기서 우리는 주목할 만한 연관성 하나를 유추해낼 수 있는데, 이 글의 서두에 제시한 바느질의 수공성과 한옥의 장인적 건축술이 그것이다. 두 행위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손으로 행해지며, 기계적 메커니즘과는 달리 더딘 작업 시간과 일률적이지 않은 공정을 필요로 한다. 그 점에서 두 행위는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해 얻는 경험, 또 기억의 구축 및 그것의 환기/재생과 닮았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디지털 초고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거에 전 생애를 경험할 수는 없으며, 우리의 기억이 형성되고 밖으로 꺼내지는 과정이 결코 기계적 메커니즘과 동일할 수 없다는 점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도호가 직물과 손바느질을 채택해 거의 편집적으로 느껴질 만큼 완벽하게 그 외관을 모방해 지은 작품-집은 얼핏 그 방식이나 재료 면에서 유사해 보이는 크리스토(Christo)의 설치미술과는 방향이 다르다. 후자가 사회의 현실적이고 구체적 조건에 개입하는 방향성의 미술이라면, 서도호의 경우는 개인의 취향과 태도 또는 내면성으로 향하는 미술인 것이다. 어쩌면 리움의 <집 속의 집> 전시작들이 예외 없이 감탄스러운 디테일, 심지어 문고리의 둥글게 말린 사슬조차 매끈하게 바느질해놓는 식의 재현에 바쳐진 심리적 배경이 거기 있을 것이다.

사실 <집 속의 집>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서도호의 작품은 지난 십여 년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작가가 지속해서 선보여온 ‘바느질로 지은 집’보다는, 애니메이션 방식의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다. 물론 이 영상작품은 시각적 아름다움 면에서 여타 천으로 만든 집에 견줄 수 없으며, 표현의 정교함이나 형식적 세련됨 면에서도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거기서는 단순히 매체의 변화나 표현방식의 변주에 기인한 새로움이 아니라, 작가가 그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매여 온 사적 경험과 기억 세계 바깥으로 나가는 요소가 힘을 발휘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요소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집단의 근원적인 동시에 미래적인 소망이다. 6개의 채널로 이뤄진 그 작품에서는 축조할 다리에 관한 드로잉 및 건축 데이터 영상과 함께, 지도상으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북미 대륙과 한반도를 왕복하는 무수한 선들이 결국 다리가 되어 두 곳을 잇고 그 위로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작은 집이 나타나는 영상이 주가 된다. 그 이미지는 분명 미국 유학 이후 유명 작가로 활동하면서 세계 이곳저곳을 횡단하는 서도호의 집/고향을 향한 작은 소망에서 발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지구 반 바퀴만큼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을 다리로 연결하고, 그 곳에 언제나 자신이 편안히 쉴 집을 지으리라는 꿈은 19세기 파리의 삽화가 그랑빌(J. J. Grandville)이 그린 <행성 간 다리 (Un Autre Monde)>와 무척 닮아있다. 단지 가시적 형상만이 닮은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그런 이미지의 하부를 지배하는 소망이 닮았다. 태양계의 다섯 개 별이 철제 다리로 연결돼 있고, 가스등이 켜진 그 다리 위를 두건 쓴 어떤 이가 저녁 산책하듯 걷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랑빌의 삽화에서 우리는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인간의 오래된 꿈을 본다. 서도호의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에는 그와 유사하게 순진하면서도 원대한 인간 비전이 ‘개별화된 소망의 형태’로 유전하고 있다. 공동체적 행복감(euphoria)은 문화적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그렇게 건드려지는 것이다.

 

강수미 (미학,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월간 art in culture,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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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의 디아스포라, 그러나




http://www.ocimuseum.org/new/exhibition/exhibition_2012_05_01_1.asp


풍경화의 디아스포라, 그러나

 

강수미 (미학)

 

“그리고 그곳에는 광막한 바다를 건너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건조된 범선들을 타고 바다를 횡단하는 수부들에게 수정같이 번쩍여 보이는 지붕을 한, 빛나는 궁전이 하나 솟아있나니, 그리하여 그곳에 그 나라의 온갖 짐승들과 떼 지은 살찐 가축들 그리고 최상의 과일들이 모여드는지라”

- James Joyce, Ulysses

 

1. 지금 회화의 위치

디아스포라(diaspora), 한자로 이산(離散)은 애초 민족이 자신들의 고국에 집단으로 정착해서 살지 못하고, 혹은 고향을 상실하고/뿌리 뽑힌 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흩어져 사는 처지를 뜻하는 단어다. 따라서 이 용어를 그림에 가져다 쓰는 일이 부적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원천을 잃어버리고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모든 존재가 사실 디아스포라 상태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림에 그 말이 적용되지 못할 법도 없지 않은가?

특히 오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의 스타일을 보건대,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현대 회화의 유행하는 특정 경향 내지는 방법론을 설명하기에 꽤 유효적절한 것 같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문인화의 외관을 차용해서 지금 여기 사물들을 그린 그림, 중국 명 ․ 청시대의 산수화 구도를 빌려다가 그 속에 오늘날의 다종다양한 일상사를 끼워 넣은 그림, 17세기 플랑드르 화파의 풍경화나 정물화 양식에다가 21세기 디지털 대중 문화산업시대의 이미지 및 상품을 조합해 그린 그림들 말이다. 그런 그림들에서는 본래 신화화, 종교화, 문인화, 산수화, 풍경화, 정물화, 누드화, 초상화, 알레고리회화 등등이 태어나고 하나의 회화 형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문맥/고향/원천은 사라진다. 대신 시각적 요소들만 파편화된 채 등장한다. 이제까지 동서양에 존재해온 회화 일반을 민족 같은 것으로 인간화해도 좋다면, 그렇게 양식 ․ 도상 ․ 모티브 ․ 장식적 파편들로 따로 떼어 내져 이 작가의 저 그림에, 저 작가의 이 그림에 차용되거나 이식되는 기존 회화의 형편은 그야말로 현세의 잡다한 이미지세계를 방랑하는 디아스포라에 다름 아니다.

 

2. 표면의 여정

황지윤의 그림들 또한 일견 위와 같은 의미에서 회화의 디아스포라, 특히 풍경화의 디아스포라처럼 보인다. 그녀가 2007년부터 현재까지 그린 그림들 중 다수가 기존 동서양 회화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고, 아마도 우리가 익히 봐온 덕분에 친숙해진 양식화의 소재, 구도, 형상, 표현 기교 등을 모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이 젊은 작가가 의식적으로 알고 그랬다기보다는, 이제까지 받은 미술교육과 경험한 시각문화를 통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형성한 상상력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가령 황지윤의 작품에서 우리는 중국 북송시대 산수화나 조선시대 청록산수화부터 이발소그림의 전형인 다산(多産)의 돼지 그림이나 자연물을 의인화한 민화(民話)까지, 두루 기존 회화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또는 고대 로마의 프레스코 벽화 및 15세기 르네상스의 제단화에 구현된 신화적 풍경, 17세기 북유럽 바로크의 드라마틱한 풍경,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숭고한 풍경 등등을 꼽아볼 수도 있다. 예컨대 황지윤은 <조춘도(早春圖) 1>에서 중국 북종산수의 대명사로 꼽히는 곽희(郭熙, 약 1001~1090)의 동명 그림을 직접적으로 ―주제부터 구도까지― 모방한다. 또 <달빛그림자 2>에서는 전체적으로 전경 ․ 중경 ․ 후경이 있는 산수화의 전형적 구도를 취하는 가운데, 그림 곳곳에 문인화 또는 키치그림에 흔히 등장하는 모티브를 패치워크처럼 잇댔다. 즉 세로로 긴 화폭의 호방한 산수풍경 속에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알 같이 그려 넣은 것이다. 중경의 오른쪽에서는 물레방아가 돌고, 왼쪽에서는 주렁주렁 새끼돼지를 품은 어미돼지가 누워있으며, 그 밑에 선사와 시동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리를 건너고, 물가에서는 낚시질하는 이가, 후경 부분 나무 밑에서는 중년의 남자가 마치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에서 늙은 선비가 그러듯 물을 보며 서 있고.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꼼꼼히 덧칠해 그린 황지윤의 그 이종(異種) 산수화에서 회화의 원전(原典)들은 전통의 깊이를 고수하지 못하고 화면 여기저기를 떠돈다. 동시에 애초 그것들이 속했던 관계가 아니라, 생경하고 다소간 뜬금없는 사이로 연접하며 이미지의 퍼레이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감상자 또한 그림 표면의 곳곳을 유랑하는 양식화된 회화의 파편들을 따라 회화 전통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나 감상법 없이도 즐길 수 있다. 마치 이국의 다양한 풍경들을 인공적으로 한데 모은 테마파크를 누비듯이. 신구(新舊), 성속(聖俗), 동서(東西)를 가로질러 온갖 문화의 형상들이 미니어처로 재현된 민속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을 들여다볼 때처럼.

 

3. 경험의 여행

하지만 황지윤의 작품은 차용(appropriation) 개념을 표방한 포스트모던 회화가 아니며, 그녀의 작업 태도 및 방식은 유희적 혹은 비판적인 목적에서 전통문화예술/민속적 이미지를 브리콜라주(bricolage)하는 동시대 다수 젊은 작가들의 범주와 완전히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우선 황지윤의 그림들이 곽희의 <조춘도>를 모방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특정 그림과 1:1 대응관계에 있지 않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녀의 풍경화는 일정 정도 우리가 그것을 처음 봤을 때 어디서 본 듯이 느낄만한 시각적 친밀성을 지니고 있다. 혹은 오래전 동양이나 서양의 미술사에 등장하는 대가들이 일가를 이뤄놓은 양식을 장르나 주제에 상관없이 가볍게 가져다쓴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시각적 인상으로만 그렇다. 반면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황지윤의 그림들에는 참고문헌처럼 달릴만한 개별 원전이 존재하지 않으며, 화집의 도판들에서 고스란히 따온 도상들 또한 없다. 대신 그녀는 화면의 구성, 정조(tone), 표현 기법 등 구조적인 차원을 모방하거나 재구성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것이 바로 황지윤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여러 젊은 화가들이 엇비슷하게 취하는 방식이라고, 그러므로 각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모방이나 재구성 자체가 탈 맥락화, 파편화, 이종의 혼성을 유행처럼 따르는 경향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범주화해버렸을 때도 남아있는 개별성이 황지윤의 그림에는 있다. 이미지의 경험과 경험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엮이는 점, 테크닉의 학습과 상상력의 실행이 병행되는 점이 그것이다.

굳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자면, 황지윤은 국내외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낯선 풍경과 세태를 몸소 겪는 여행자이자, 동시에 도서관에 앉아 골똘히 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의 화집을 들여다보고 스튜디오에서는 그런 그림그리기(painting)를 연마하는 견습생이다. 이 두 상반되는 모습, 또는 병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삶의 태도 내지는 작업의 방식이 황지윤의 그림을 개별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녀는 실제로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국내의 지방 소도시든 유럽의 관광지든, 혼자 하는 배낭여행이든 패키지여행이든 가리지 않고 수시로 여행을 떠나며, 그 여행의 와중에 얻은 경험들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 그 경험은 심리적이거나 정서적으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것들이 별반 아니다. 그보다 때로는 혼자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 벽에 걸린 키치 그림을 따라 스케치하거나, 어떤 여행지에서 폭우와 화재가 동시에 일어나는 광경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며 나중에 꼭 그것을 그려보겠다고 생각하는 식의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경험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혹은 그것을 경험했던 때로부터 시간이 상당히 흐르는 동안 황지윤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익명의 풍속화를, 갑자기 마주쳤던 기이한 사건을 중국의 산수화나 낭만주의 풍경화 구도에 접목하고 그 안에 녹여내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기존 회화 양식과 모티브를 참고하고, 테크닉을 변주하는 것이다. 예컨대 앞서 소개한 <달빛그림자 2> 속의 물레방아와 돼지 그림은 그런 경험에서 재구성된 것이며, <롯의 증언 Ⅰ>에 그려진 검은 구름 밑 폭우와 섬 안의 불길이 그렇게 재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롯의 증언 Ⅱ>는 그 폭우의 정경을 뚫고 들어갔을 때, 그 안에 벌어지고 있을 자연의 사태를 작가가 자신의 상상과 신화의 힘을 빌려 알레고리화한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그 정경은 1513년 경 피에로 디 코지모(Piero di Cosimo)가 그린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를 환기시킨다.)

위와 같은 두 방향의 의미, 즉 한편으로는 기존의 회화적 양태나 속성이 부분적으로 발췌돼 황지윤의 그림 표면을 떠돈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 화가 자신이 세계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경험한 부박하지만 독특한 사태들이 그림에 이미지화된다는 의미에서 황지윤의 회화는 ‘디아스포라 상태’의 것이다. 그것은 일견 정처 없고 원본 없는 이미지들의 유희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지젝(Slavoj Žižek)이 언어 분석을 통해 명쾌하게 정의했듯이, 우리 각자의 주관적 경험이 다른 이들과 섞일 수 없고 다른 무엇으로도 유보할 수 없는 개인성(the in-dividual)을 마련해주는 것이라면, 황지윤의 작품에서는 그녀의 떠돌이 경험, 그 경험적 지각이 바로 고유한 성향이 되고 특별한 정조가 된다.

 

4. 유사성의 여러 세계

우리가 현재 우리 자신 안에 형성해놓은 그림 혹은 시각이미지의 세계는 어디서 왔는가? 많은 경우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본 것들, 즉 시각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감상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물들, 풍경, 겪은 사건이나 본 것들이 우리의 상상력 및 기억력과 결합해 일종의 이미지 저장고이자 생산처로서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해둔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즈 Ulysses』의 한 장면은 읽는 이에게 스펙터클한 풍광과 찬란한 인공물과 풍요로운 자연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작가의 고향이자 작품의 배경이 된 아일랜드 더블린의 어느 시장을 묘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정경이 누대에 걸쳐 축조된 문학적 표현법과 만나고, 조이스라는 저자의 개별적 삶의 경험 및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문학 실험과 결합하면서 광대한 바다, 위용 넘치는 범선, 수정 궁전, 육감적인 짐승 떼, 윤택한 과일더미 이미지를 출현시킨다. 우리에게는 그 이미지가 애초 초라한 도시의 시장이라는 사실이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그 초라한 실제 세계와 황홀한 문학이미지의 세계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유사성의 즐거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황지윤의 그림들을 통해서도 그 즐거운 유사성의 관계가 촉발된다. 앞서 분석했듯이 그녀의 작품들에는 분명 기존에 그려졌던 회화의 양식과 모티브가 모방돼 있기 때문이며, 그와 동시에 황지윤만의 경험과 상상력이 그 모방 대상들을 독특한 정조를 풍기는 풍경화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의 그림을 친숙해하면서, 그러나 바로 그 자체만의 특별한 이미지로 바라볼 수 있다. 또는 이러저러하게 알고 있는 것과 눈앞에 펼쳐진 화폭 속 특이한 미적 대상을 요소요소 따져가며 즐거워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황지윤의 그림이 지닌 미덕이고, 황지윤이 참조한 회화의 여러 양식과 모티브가 그 신참 작가에게, 그리고 감상자에게 행사하는 이미지의 힘이다.

이제 황지윤의 작품 중에 그 이미지의 힘을 간단하지만 명쾌하게 보여주는 <청솔모>라는 제목의 드로잉을 논하면서 글을 마치기로 하자. 그 그림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서 오른쪽 끝에 그려진 소나무와 매우 닮아 보이는 나무 한그루를 화면 가득 배치해 푸른 잉크 선만으로 그린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연관관계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연상 작용에 의한 것으로, 애초 작가에게는 그런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고, 다른 감상자는 그런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청솔모>는 보는 이에게 푸른 소나무의 기상이 느껴지는 소박하지만 담대한 그림으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며 한 걸음 바짝 다가서서 작품을 보면, 이내 감상자는 그림 속의 나무가 소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소나무 솔잎인 양 가지에 뭉쳐있는 것들은 다소 놀랍게도 작은 짐승 떼, 작품 제목을 참조하자면 ‘청솔모’라 불리는 다람쥐과(Family Sciuridae)의 동물들이다. 보통 다람쥐보다는 몸집이 크고 현재 남한에서 그 개체수가 현저히 늘어났다고 하는 이 동물은 큰 나무줄기나 나뭇가지 사이에 서식한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황지윤의 <청솔모>는 바로 그러한 사실들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 그것처럼 보이는 청솔모 떼를 표현해 놓았다. 차가운 흰 여백의 공기 속에서 고고하게 서있는 소나무 몸체는 한순간 날짐승의 소란스러운 몸짓들로 바뀐다. 청빈한 나뭇가지들은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무리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검은 몸과 두툼한 꼬리의 동물 떼거리가 된다. 다소간 무섭고, 다소간 징그럽게도. 어디서 그러한가? 우리의 지각 과정에서. 여기서 핵심은 그 지각의 과정이 황지윤의 드로잉이 없었다면 촉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점에서 디아스포라처럼 화면을 부유하는 회화 이미지의 힘이 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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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칼럼 4/20 차용과 도용의 판단 art und weise



애써 핀 꽃들이 우수수수 떨어지는 어제, 오늘입니다.
힘겹게 폈을 텐데, 세찬 바람과 빗물 때문에 물기 어린 도로 위로 떨어져 발길에 짓밟히는 연약하디 연약한 벚꽃, 매화 꽃, 목련 꽃잎들. 그것들에 어쩐지 마음이 쓰이는군요
.

그건 그렇고,
아래는 지난 금요일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제가 이 글을 퇴고해서 신문사로 넘긴 시점은, 국민대학교 측이 문대성 씨의 논문 표절 심사 결과를 공개하기 전 단계였는데, 바로 다음 날 예비조사 결과로 "표절 인정"을 발표하더군요.
그 비슷한 시기, 문대성 씨는 발빠르게(그러나 이미 그 가볍고 사려 깊지 못하며 약삭빠른 처신이 18일 기자회견 취소로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했구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새누리당 탈당은 그가 당과의 관계에서 취할 행동일지는 모르겠으나, 국민과의 관계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입니다. 문대성 씨가 지체 없이, 어떠한 이유도 불문하고,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고 취해야 할 행동은 '국회의원 당선 반납'입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때문에 문대성 같은 이가 당선됐다 하더라도, 국민의 뜻을 대표할 자격이 없고, 그 과거 행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문대성 씨는 국민의 대의를 대표할 자격을 애초부터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니까요.



전문을 읽으시려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4/h20120419210152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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