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vey Shows Pain of Recession for Artists

A Survey Shows Pain of Recession for Artists
Published: November 23, 2009

http://www.nytimes.com/2009/11/24/arts/design/24study.html?ref=design


"“A lot of the artists who were reporting were telling us, ‘I live in a recession all the time, so this downturn has really not been so different for me,’ ” said Judilee Reed, the executive director of Leveraging Investments in Creativity."

"Perhaps because artists tend to have an idealistic bent, the survey found, however, that many also reported upsides to the downturn: that it has given them freedom to experiment and to spend more time on their art when avenues for making money are closed."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경기] 침체에서 반대적인 면(상승 경향)을 보는 이유는, 아마도 아티스트들에게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가, 즉 돈을 버는 길이 막혔을 때 예술가들에게는
실험할 자유와 자신의 예술에 보다 더 투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임이 조사에서* 나타났다."

* The survey was conducted in July and August and commissioned by a nonprofit artist-support organization called Leveraging Investments in Creativity, which worked with Princeton Survey Research Associates International and the Helicon Collaborative, a consulting firm that advises nonprofits.




by 강수미 | 2009/11/27 14:57 | andere Motive | 트랙백 | 덧글(0)

11월25일 서울다움찾기 상상마당 포럼 리뷰

서울문화포럼 '서울다움찾기' 도시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통해 서울을 재발견하다



서울문화포럼 지역문화연구 프로젝트 <서울다움 찾기: 서울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이하 서울다움 찾기)>의 네 번째 '수요 강연대담'이 지난 25일 홍대 상상마당 아카데미실에서 개최되었다. 유관기관 및 단체, 기업의 실무자, 학생 등 약 120여 명의 다양한 청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예술의 영역이 왜 이 도시에 집중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대도시 서울이 갖는 복합적인 속성과 아티스트 간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강수미 미술평론가는 강연을 통해 아티스트가 서울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 묘사적인 표현에서 나아가 다종다기하고 복잡한 현상들과 그 현상들이 산출되는 경제·정치·사회·문화적 역학에 대한 통찰을 통하여 서울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을 지양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도시에 대한 시차적인 관점과 구조 또는 층위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사례를 서울의 인공위성 사진과 당시의 청계천 주변의 건물옥상을 오브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병렬, 그리고 과거에 그려진 지도와 현재 서울 도시의 위성사진이라는 병렬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강홍구 작가의 < drama set 8 >, 최진욱 작가의 <두 여자 인왕산을 올라 청와대를 바라보다>등 현대미술과 도시와의 소통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시도하고 서울을 재발견하는 작가들의 시선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이어 박성태 공간사 편집총괄과 고원석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대담에서는 영등포 경방 타임스퀘어 등과 같이 도시 안의 거대자본과 문화·예술과의 만남을 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도시라는 것이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특성을 갖는 만큼 타임스퀘어와 같은 다중적 의미의 도시공간을 보다 순환적인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그 안에 문화와 예술을 어떻게 투입시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공존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by 강수미 | 2009/11/27 13:40 | andere Motive | 트랙백 | 덧글(0)

11월 25일 상상마당 서울 포럼 강연

서울문화포럼 '서울다움찾기' 수요 강연대담 개최



'아티스트와 서울의 관계'를 주제로 <서울다움찾기 수요 강연대담 시선 4. 아티스트와 도시, 서울의 관계> 도시를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시선과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서울을 재발견하다.

서울문화포럼 지역문화연구 프로젝트 <서울다움 찾기: 서울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이하 서울다움 찾기)>의 네 번째 '수요 강연대담'이 오는 25일 오후 4시부터 홍대 상상마당 아카데미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강연대담에서는 '아티스트와 도시, 서울의 관계'를 주제로 서울을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생각을 나누어본다. 서울의 지역적 정체성이나 서울 전반이 지니고 있는 숨겨진 이면에 대한 아티스트의 시선과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먼저 '서울 생활의 발견, 미와 현실의 가장자리에서'를 주제로 강수미 미술평론가의 강연이 진행된다. 강수미 미술평론가는 도시의 일상적 구조와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바탕으로 '예술과 삶의 융합'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을 동시대의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작품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양자의 관계는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논해보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이어 박성태 공간사 편집총괄이 진행하고 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대담을 통해 아티스트와 도시가 어떻게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는지 논해보고자 한다. 도시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통해 서울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서울문화포럼은 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문화코드로 본 이태원', '창조지구와 지역가치: 문래동 예술창작촌', '경동시장의 장소성과 현대화', '아티스트와 서울의 관계'의 크게 4개의 주제를 기반으로 한 지역문화연구를 진행하여 왔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수요 강연대담' 을 개최하여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서울을 이루는 다양한 지역문화를 살펴본 바 있다. 오는 12월 5일에는 그동안 진행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토요 열린포럼'이 개최된다.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개최되는 이번 포럼은 우리가 사는 서울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문화적 해석, 그리고 가치에 대한 생각들은 나누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수요 강연대담'과 '토요 열린포럼'은 학생 및 일반시민에게 열려있는 프로그램으로 별도의 참가비는 없으며 참여를 원하는 서울문화포럼 사무국으로 메일(program@scf21.org) 또는 팩스(02-722-7810)를 통해 참가신청이 가능하다.(문의: 사무국 02-722-7916,7)

출처 : 서울문화포럼

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보도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by 강수미 | 2009/11/23 19:38 | 인사 | 트랙백 | 덧글(0)

2000년대 한국미술의 정치학-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서 위반을 상연하기

2000년대 한국미술의 정치학

-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서 위반을 상연하기

 

 

강수미 (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1. 지형지세 지도그리기

1990년대 중반까지 가시적/비가시적으로 한국미술계의 소위 ‘주류(작가 ․ 미술대학 ․ 단체 ․ 기관 혹은 이를 포괄한 의미에서 제도)’를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금기는 ‘미술이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서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군사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 여파가, 그때까지 미술에서 민중미술과 같은 현실 사회 정치적 발언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사건이나 현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조차 억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미술계 금기의 주재자들은 그 논거를 미술이 ‘순수’하고, ‘자율적’인 영역이라는 서구 유미주의 미학과, 미술의 진보는 ‘자기비판을 통한 갱신’의 과정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에서 찾았다.1)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서구 근대 미학과 비평 이론에서 정당성을 빌려온 한국모더니즘미술의 ‘非/反 정치적 성향’, 그리고 그 이론들이 어느 때부턴가 단색 추상 또는 앵포르멜회화, 비구상 철골조각 같은 ‘한국형 스테레오타입 현대미술’로 변질된 채 미술의 정치성에 대한 금기를 재생산한 과정이, 미술계 내부에서 실행된 특수한 정치였다는 점이다. 또한 그 일련의 과정에 미술의 범위를 이분법적 항목들로 재편하는 미시정치의 테크닉 ―예컨대 미술로 보일 수 있는 것/없는 것, 다뤄야할 것/배제해야 할 것, 미적 가치가 있는 것/무가치한 것 등― 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략 196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특정 대학 ․ 공모전 ․ 화랑 ․ 협회 ․ 저널 ․ 미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도권 미술이 ‘조형예술을 위한 조형예술’이라는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배타적인 미술의 정체성과 시각문법만을 전수하고 받으면서, 한국현대미술에서 특정 지분을 공고히 하고 일반화한 미술의 정치학이다. 여기의 ‘특정 지분’이란, 한편으로 미술 자체의 차원에서 볼 때, 삶의 이물질이 정화된 ‘순수미술’이라는 관념, 일상과 대중문화보다는 우위에 있는 ‘고급미술’이라는 자의식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국미술 전반에서 그 주류 및 제도권 미술이 확보한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뜻한다.

2009년 오늘, 가까운 과거 미술의 상황을 되짚어본 것은 현재 한국 현대미술계가 누리고 있는 자유, 보다 정확히 말해서 개별 작가와 그들의 미술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주제, 모티브, 표현매체, 관계 맺기 및 활동방식의 자유가 애초부터 한국미술에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자유는 요컨대 과거의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틀을 벗어난 이후의 것이며, 소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다수의 금지와 억압이라는 제한을 위반하고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누가, 언제 그 틀을 벗어나고, 한계를 위반했는가? 내가 보기에, ‘한국현대미술의 비정치성’이라는 격자 구조는 첫째, 1980년대 민중미술의 주도 아래 ‘현실사회정치 vs 미술의 현실 발언 및 참여’라는 구도 속에서 문제시되고 비판적으로 공격당한다. 둘째, 그 격자는 1990년대 중후반 경부터 신세대 또는 젊은 작가의 등장과 함께 ‘대중/하위/시각문화, 테크놀로지/생태환경/도시문화, 매스/멀티/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문화연구/비교문학/페미니즘 등 미술 외적(이라 여겼던) 영역과 미술의 교차, 융합’이 폭발하면서 거의 전면적으로 해체된다. 그와 동시에 이들 젊은 작가들의 이질적이고 혼성적인 미술을 보이고, 담아내고, 확장할 여러 형식들(대안공간, 레지던시 프로그램, 새로운 형태의 공모전, 기획전 등)이 출현하면서, 기존 제도권미술의 유형무형 체제들이 유명무실해졌고, 타의적 개조의 과정을 겪었다.2)

그런데 여기 이렇게 두 비판, 위반, 변화, 확장의 계기를 병렬했지만, 80년대 민중미술과 90년대 말 미술3)의 차이는 뚜렷하다. 먼저 전자는 한국식 모더니즘 미술과의 대립, 그리고 한국사회 내부 군부독재체제와의 대립이라는 이중의 대립각을 세웠다. 그리고 제도미술의 억압과 동시에 한국현실의 정치사회적 억압을 거부하고 비판하면서, ‘민족과 민중을 위한 미술운동’이라는 정치학을 펼쳤다. 반면 후자는 애초에 그런 대립구도가 설정되지 않았거나 모호하게 열린 대립구도 속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미술 내부와 일상생활에 상존하는 여하한 금기, 압력, 제한에 대한 개인적인 동시에 전 지구적인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모든 기성에 대한 회의와 위반의 미술’이라 요약할 수 있는 정치학을 실행했다. 이를 우리는 ‘민중미술의 리얼리즘 투쟁’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해체’라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이가 뚜렷한 만큼, 이 두 계기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근 십년을 보낸 지금 현재 한국현대미술의 정치성에 끼친 영향 또한 뚜렷하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영향의 질적 차이보다는 영향의 범위에 더 큰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현실사회와 제도권 미술에 대한 민중미술의 비판적 정치학은, 이후 90년대 말 포스트모더니즘미술의 ‘모든 것이 다 되는 식(anything goes)’ 정치학에 참조점 중 하나이거나 지류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렇게 후자가 전자를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할 때, 내가 이와 같은 지형지세를 바탕에 깔고, 다음에서 논하려는 것은 2000년대 지금, 여기 한국현대미술이 이것과 어떤 관계에 있고, 어떻게 수용했으며, 변경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세기의 거의 십년 동안 한국현대미술이 어떠냐는 것이다.

 

1) 정무정은 미국모더니즘미술과 유럽 앵포르멜이 1950년대 말-60년대 한국 앵포르멜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며, 정치 사회적 정황상으로는 60년대 미국의 대(對) 아시아 반공주의 정책, 그리고 박정희 주도로 이뤄진 1961년 5.16 군사정변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문제제기한다. 정무정, 「추상표현주의와 한국 앵포르멜」,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회, 2001(15호), pp. 247-262 참조.
2)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강수미,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서울: 현실문화, 2009, pp. 15-23을 참조.
3) 우리는 이 시기 미술을 단적으로 규정할 말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 ‘신세대미술’, ‘yKa 미술’ 등이 쓰이고 있지만, 이런 용어는 세대적 구분에 한정된 것이며, 90년대 말의 다종다양한 미술의 변화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포스트모더니즘’ 경향 속에 있던 당시 미술의 속성상, 대표성을 가진 명칭 제시는 어려울지 모른다.

 

2. 미술의 정치: 사회정치적 미술, 사회정치적 ‘스타일’의 미술

우리가 미술에서 ‘정치’를 의제화 할 때, 나는 그 의제의 방향이 다음 몇 가지 정도가 되리라 본다. 첫째, 가장 빨리 떠오르고 익숙한 것으로 ‘현실정치와 관계있는 미술’ 둘째, 랑시에르(J. Rancière)가 “감성의 분할”이라 부른 것4)으로서 ‘기성의 세계 사이에 교환, 이동, 변형을 도입하는 미술’ 셋째, 미술이 제반 사회영역의 매트릭스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작용하는 권력방식, 또는 미술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방식. 첫째 예는 앞서의 민중미술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에 해당하는 예는 18세기에 예술이 사회와의 어떤 직접적 관계나 사회적 기능을 상실했을 때 바로 그 ‘관계없음’을 자체의 정체성(art for art's sake)으로, 그 ‘사회적 기능 없음’을 예술적 기능으로 규정한 서구 유미주의/예술지상주의의 정치와, 그것을 한국미술의 문맥에서 형질 변경함으로써 헤게모니를 확보한 한국모더니즘미술의 정치를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제로서 ‘미술의 정치’는 무엇이고, 거기에 해당하는 한국미술의 사례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는가? 우선 랑시에르를 참조하자. 그는 “현대예술에 대한 정치적 질문이 있다면 (중략) 예술의 세계와 비예술의 세계 사이의 교환과 옮김의 놀이 위에 세워진 정치에, 정치적 ‘제3자’에 영향을 미치는 변형들에 대한 분석 안에서”라 단언한다.5) 즉 우리가 현대예술에서 ‘정치’를 논하려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이 기존에 ‘예술’이라고 규정되고 영토화 된 세계의 바깥, 혹은 다른(“비예술”) 세계, 또 혹은 타자(“정치적 제3자”)의 세계와 교류하고,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영향의 관계를 복합화 하는 지형지세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200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정치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서도 분석했듯이 지금 여기의 미술은, 특별히 구체적인 대상(예컨대 “반민족, 반민중적 세력”6))과 대립각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간 미술에서 비정치적 입장과 정체성을 강제한 주류/제도미술의 좁은 틀 바깥, 대안의 장소들, 사회에서 이접(移接) 가능한 모든 영역/장소/주체-타자들을 가로지르고, 자리 바꾸고, 융합하며, 변형적인 것을 생산한 90년대 말 미술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의 연장선이거나 후속편, 그러나 그 성격과 양상이 달라진 연장이거나 후속이기 때문이다. 7) 물론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현대미술을 두고 그 정치를 질문할 때, 랑시에르식 두 번째 미술의 정치는 첫 번째 의미의 정치, 즉 현실정치와 비판적으로 관계하는 미술의 정치와도 일정 정도 겹쳐진다는 점을 누락해서는 안 된다. 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권력관계, 위계질서, 수구성, 기득권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정치의 파생물이었고, 그런 만큼 그 프레임을 깨거나 탈영토화하거나 접속-분리관계를 생산하는 미술은 불가피하게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중첩되고 복합적인 의미로 정치적인,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현실정치와 관계있으며 없는, 기존 미술의 경계 안/밖에 있는, 사회적 삶과 감성의 세계를 미시적으로 세분화한 미술이 90년대 말부터 이후 4-5년 간 이어졌다고 본다. 이 시기 구분은 한국현대미술계에 미술시장의 영향력이 과부하 되기 시작한 2005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자의적 구분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즈음을 기준으로 90년대 후반 한국현대미술이 가졌던 사회정치적 차원, 그 힘, 그 가능성은 상당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2005년 이전 미술(이 글에서 90년대 말 미술로 총칭하는)이 ‘사회정치적 미술’이라면, 이후 지금 여기 미술(2000년대 미술)은 ‘사회정치적 스타일의 미술’로 보인다.

4)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을 “어떤 공통적인 것의 존재 그리고 그 안에 각각의 몫들과 자리들을 규정하는 경계설정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감각적 확실성의 체계”라 정의한다. 이를 미술에 적용해 보면 어떤 것이 ‘미술’이라는 공통 공간에서 의미와 가치를 획득/배제되는 것은 감성의 분할에 달렸으며, 그런 의미에서 ‘미술’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감성의 분할이라는 체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Jacques Rancière, Le partage du sensible: esthétique et politique, 오윤성 역, 『감성의 분할-미학과 정치』, 서울: 도서출판 b, 2008, pp. 13-14.
5) Jacques Rancière, Malaise dans l'esthétique, 주형일 역, 『미학 안의 불편함』, 고양: 인간사랑, 2008, pp. 90-91.
6) 최열은 1986년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논리와 실천」이라는 글에서, 80년 민중미술 및 문화운동은 “반민족, 반민중적 세력을 향한 공격의 효율적 수행을 그 중요과제로 설정하였다.”고 적고 있다. 최열, 『미술과 사회-최열 비평전서』, 파주: 청년사, 2009, p. 108 참조.
7) 그런 의미에서 2009년 경기도미술관이 기획전 <악동들 지금/여기>에 상정한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이라는 화두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제시어로 보인다. 일단 ‘정치미술’이라는 낯선 용어 자체가 마치 개념이 정착된 단어처럼 쓰였으나, 기획의 변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없다. 그럼에도 전시 내용으로 어렵사리 유추하자면, 여기서 ‘정치미술’은 80년대 민중미술과 직간접적 계보 속에서 형성된 90년대 이후 사회정치적 주제, 소재, 메시지를 담은 미술을 총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말 다수의 작가와 그/녀의 작품(업)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치’를 카운터파트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상자/독자로 하여금 ‘현실정치와 그 비판적 미술’이라는 한정적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정치미술’이라는 용어는 그 미술의 의미와 현재적 가능성을 다소 축소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3. 드러내기의 ‘전시하는 힘’, 정치학 없는 정치학의 ‘상연하는 힘’

내게 90년대 말 미술의 정치학/정치적 역량을 요약하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를 ‘드러내기/전시하는 힘’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 미술에 대해서는 ‘정치학 없는 정치학/상연하는 힘’으로 정의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90년대 말 미술은 그때까지 배제된 것, 은폐된 것,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했던 것, 경전과 규범과 질서의 경계 너머에 배경 혹은 유령처럼만 존재했던 것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98년 <도시와 영상>전은 ‘의식주’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가 먹고, 입고, 사는 세속적 삶의 극히 구체적인 면면들과, 관행적 조형언어로는 표상하기 힘든 난삽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친숙하면서도 낯선 감수성의 세부들을 다뤘다.(예컨대 박이소의 <미확인 발광물체>나 <금속조각>) 이는 과거 모더니즘의 심미적 초월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것이고, 민중미술의 이념적 실천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예컨대 99년 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제3자인 여성, 생물학적으로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정체와 지위로는 자기 이름도, 욕망도, 목소리도 없는 것으로 간주돼왔던 이들이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다.(예컨대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 이들 전시는 말 그대로 순수-조형 또는 이념중심 한국미술이, 남성중심-유교적-봉건적 한국사회가, ‘당연히’ 주목하지 않았던 변화된 생활의 세부와, 권리가 지워진 사회적 존재들에 주목함으로써 그 ‘당연함의 근거 없음’을 드러냈다. 또 그렇게 주목하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이분법적 위계와 미적 가치평가 구조 속에서는 알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다양하고 차이나는 의미와 감각, 질과 양이 현상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드러냄, 보여줌은 정치학적 기술로 말하면 ‘전시하기’이다. 소외된 것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상투화된 정당성과 자명성을 성찰케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엇이 가능할 수 있음을 시각이미지의 특화된 장(場)으로 제시함으로써, 허위적 안정을 깨고 변화를 향한 꿈과 욕망을 도입하는 기술로서의 전시하기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90년대 말 한국미술은 이렇게 ‘드러냄-전시하기’를 통해 한국사회의 빈곤한 감수성과 환영적 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이와는 달리 2000년대 미술은 애초 이 시기 미술이 90년대 말 미술의 연장 또는 후속이라는 점에서 그 고유의 정치학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2000년대 미술은 아주 가까운 과거의 미술에서 드러내고, 담론화하고, 논쟁을 생산하고, 가시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여러 사회정치적 이슈들, 미적 형식들, 제도들, 감각 질(質)들, 표상의 방법론을 일종의 유산처럼 물려받았다. 대안공간들은 이미 너무 많다 싶을 정도가 됐고, 작가가 전시장을 찾는 일보다 전시장이 작가를 찾는 일이 더 다급해졌다. 2000년대 초입부터 사립이든 국공립이든, 개인이든 기관을 통해서든 급작스럽게 늘어난 각종 지원기금 및 후원제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작가와 시스템 간의 유대(혹은 예속관계)를 만들어냈고, 연중 수시로 열리는 국제전 ․ 국제심포지엄 ․ 프로젝트 ․ 이벤트 등등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바쁜 작가 상(像)’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2000년대 미술은 과거와 크게 변별되는 주제나 담론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90년대 말의 미술이 일상성에서부터 거대담론구조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내 몸의 일시적 현상에서부터 사회문화적 성(gender)/타자의 윤리학 ․ 정치학까지를 건드리고, 이미지로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미술은 이렇게 미리 뿌려진 대안적이고 위반적이며, 사회적으로 논쟁과 재고의 계기를 유발하는 체제, 주제, 담론, 표상의 씨앗들이 크는 텃밭 성격이 강하다. 이제 미술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는 없으며, 형식과 매체 또한 90년대 중후반부터 탈장르 ․ 탈 경계의 기치 아래 유연해지고 멀티미디어화 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90년대 말 미술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를 기치로 내세운 미완의 자유지대였다면, 2000년하고 십년의 한국현대미술은 ‘모든 것이 가능한 바로 그 곳’이 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2000년대 미술이 완전한 해방과 자유의 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 여기 미술에는, 이전의 한국미술에 부과됐던 억압이나, 미술이 정치경제적 ․ 사회문화적 변화의 흐름을 타면서 갖게 된 사회적 책무와는 성격이 다른 무엇이 창작 ․ 수용 ․ 의미화 ․ 배분 ․ 소유 ․ 향유 따위를 얽어매고 있어 보인다. 바로 ‘자본’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97년 연말 IMF 구제금융 위기를 맞았다. 지금 현재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다수의 20대 말-30대 초중반 젊은 작가들이 그 당시 대학에 진학하거나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경제위기’를 몸소 강렬하게 체험했다. 반드시 그 때문이라는 할 수 없겠지만, 3년 8개월에 걸친 국가경제위기상황과 그 직후 찾아온 글로벌 경제 호황의 한국 편승은, 그 극단적 추락과 비상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돈의 절대성’과 ‘자본주의체제의 맹위’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면서, 미술을 포함한 문화(상부구조) 전 영역을 명쾌하게 ‘자본의 논리’로 바라보도록 강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에게 ‘예술’이 곧 직종 중 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전시가 수익구조에 편입되며, 비평이 그러한 직업의 장과 경제체제와 공생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관건은 개인의 살아남음이지, 공동체 또는 미술이라는 특수한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2000년대 미술은 개인 작가, 개인 큐레이터, 개인 비평가의 자기 성공의 정치학은 있을지언정, 앞서 우리가 논했던 의미에서 의제화 할 수 있는 정치학은 희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집단운동의 차원에서 미술이 비판적 대립 각을 세울 대상은 그 어느 때보다 모호해졌다.(문제적 대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그 대상이 훨씬 포괄적이면서 우리의 뼈 속 깊은 곳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 개별 작가들이 그 대상과 너무 밀착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한편으로 소수의 작가들만이 자신의 작업 속에서 그 대상과 마주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또 미술계 내부에서 표현의 자유는 주어졌는데(물론 이 또한 제한적인 것이다), 경제적 문제로부터의 자유가 해결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활동을 시작한 젊은 작가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성장했으나, 청년기 IMF를 겪었고, 이후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구조로의 재편 속에서 ‘세대 내 경쟁’에 내맡겨졌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에 대한 공포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대(對) 사회적 정치적 관심보다는 개인적 생존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지배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성공을 향한 개인의 미술 정치학이 매우 민감해지고, 세련돼졌다. 거기서 파생된 미술이 ‘스타일의 미술’이다. 80년대 한국 모더니즘미술을 답습한 다수의 작가들은 시각적으로 약간씩 다른, 그러나 결국 벽지 문양 정도의 차이를 가진 관념 추상화를 그리면서 각자의 레이블을 표방했다. 이와 비슷하게 지금 여기의 많은 작가들이 스타일만 조금씩 다른, 특히 90년대 말 미술이 위반적으로 다뤘던 주제와 형식에서 스타일만 조금씩 변주한 미술 이미지를 상연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유사(pseudo) 위반의 미술을 다소간 그럴듯한 주제어로 그룹핑하는 기획전들이 일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로 나는 2000년대 미술이 ‘정치학 없는 정치학’이라고 말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나의 판단은 지금 여기 미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미술이 ‘위반을 상연한다’는 점에 대해 나는 긍정적인 부분도 보고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미술이 지속적으로 가까운 과거의 미술을 참조함으로써, 90년대 말 미술을 통해서는 미처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가 얼결에 잊어버린 과거 문제를 우리의 눈과 의식에 대고 상연한다는 사실이다.

 

 

4. 시차적 관점에서 2000년대 한국미술을 하기

90년대 말 한국미술은 억압적 체계와의 투쟁이 아니라, 그 체계와는 다르고 새로운 시스템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미술의 정치학에서 새로운 시야(視野)를 제공했다. 지젝(S. Žižek)의 개념으로 말해보자면, 미술과 정치, 그리고 미술의 정치적 역량과 테크닉 교본(그런 것이 가능하다면)에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8) 하나를 열어준 것이다. 그것은 그때까지 미술에 관한 관성적 사고가 이분법의 대립 항으로 정의한 관계로는 파악할 수 없는 층위에서 미술이 정치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시야이고, 그렇게 투쟁 구도의 바깥에서 오히려 기존 주류/제도미술의 억압과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것의 해체를 전시하는 일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알려준 관점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99년부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문을 연 한국의 대안공간들은 그간 대관화랑 아니면 미술관이라는 매우 단순한 주류 전시공간체제에 그야말로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당시의 신진 작가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개인전을 이 대안공간에서 열며 등장함으로써, 작가가 되고, 창작활동을 지속하며, 각자의 미술에 조응하는 수용자와 향유과정을 기대할 수 있는 전혀 다른 통로가 가능함을 예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90년대 말 미술이 기존 체제와 그것이 구사하는 정치학적 테크닉과는 층위가 전혀 다른 공간을 보고, 거기에 시스템을 만들고, 활용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를 찾으려 했을 때, 제도미술은 진정으로 위기에 처했고,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나는 2000년대 미술이 가까운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 모방해야할 정치학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재현하기를 금지하는 규범들에 대한 윤리학적 정치로서 현대미술, 우리의 이성과 감성, 인식과 지각을 고도로 세련되게 분절-융합하는 미학적 정치로서 현대미술, 주체 중심의 서구 근대 정치학적 범주를 위반하고 변혁하는 인간학적 정치로서 현대미술, 시장경제와 고도 자본주의체제의 강압에서 미술이라는 영역의 특수한 가치를 빼내는 예술 자율성의 정치로서 현대미술이, 바로 그것이다.

끝으로 미술비평가로서 나의 정치학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02년 콜롬비아 대학의 내셔널 아트 저널리즘 프로그램(National Arts Journalism Program)이 미국의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비평의 목적을 조사했을 때, 가장 인기 있는 목적은 ‘미술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simply describing art)’, 가장 인기 없는 목적은 ‘미술을 판단하는 것(judging art)’으로 나타났다. 이를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비평가이자 미술사가 엘킨스(J. Elkins)에 따르면, “대략 1990년대 말부터 최근 10년 간 미술비평은 문화비판의 불타는 전선으로부터 퇴각하여 국지화된 기술(description)과 조심스러운 환기라는 보다 안전하고 보호 받는 영역으로 물러났다.” 그는 미술관 또는 상업 화랑의 거창한 카탈로그나 리플릿, 삐까번쩍한 잡지, 일간지, 인터넷에서는 “비평(덧없는 비평)이 난무하지만, 동시대 지적 논쟁에서는 자취를 감췄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술비평이 세계적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한다.9)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여유는 없지만, 나는 비평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의 삶과 미술이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미술을 판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미술의 정치학이다. 
 

8) 지젝이 말하는 ‘시차적 관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두 개의 양립 불가능한 현상, 또는 상호 번역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도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현상을 포착할 수 있는 관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동일한 차원에 배치하거나, 그에 대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젝에 따르면 ‘허상’이나 ‘가상’이다. Slavoj Žižek, The Parallax View, 김서영 역, 『시차적 관점』, 서울: 마티, 2009, pp. 13-14 참조.
9) James Elkins, “On the absence of judgement in art criticism”, in: James Elkins & Michael Newman (eds.) The State of Art Criticism, New York: Routledge, 2008, pp. 72-79 참조.


2009년 11월 20일 경기도미술관 주최 학술세미나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악동들 지금/여기> 발표문
* 이후 논의를 추가, 보완하여 '한국현대미술, 시각이미지 구성, 동시대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완성할 글입니다. 인용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주십시오.





by 강수미 | 2009/11/22 15:25 | art und weis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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