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 1/27-도발적 예술행위가 덜 잔혹하다 art und weise



1/27부터 3주 꼴로 한국일보 '삶과문화' 칼럼을 씁니다.
아래 링크는 그 첫 글입니다.
데미언 허스트의 <mother and child divided>와 현재 한우 사태 및 정부 대책을 생각해봤습니다.
부디 관심 갖고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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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관계 그리고 ‘보안여관’의 유혹 art und weise




언어, 관계 그리고 ‘보안여관’의 유혹

- 다원예술과 창조적 비평에 대하여

 

 

 

우리는 다른 둘의 하나, 그리고 하나로 만났다.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에게 이 첫 문장은 매우 모호하게 읽힐 것이다. 그러니 우선 구체적 사실을 말하자. 2009년에서 2010까지, 약 2년 동안 소설가 한유주와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은 문학과 미술이라는 각자의 영역에서 잠시 빠져나와 둘이 한 쌍을 이뤄 공동의 예술을 실행했다. 2009년 <도축된 텍스트>, 2010년 <보안여관: 술화(述話)의 물화(物話)>라는 작품(이 작품들이 속한/속할 장르는 묻지 않기로 하자)이 그것이다. 그리고 강수미는 2011년 가을 문지문화원 사이가 주최한 <Creative Critic>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그 ‘쌍의 예술’을 두고 한 명의 비평가로서 말하기와 글쓰기를 한/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일어난 일에 대한 건조한 보고(報告)일 뿐, 첫 문장이 담고 있는 뜻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시 이 글의 첫 번째 문장을 불러와 앞서의 사실들과 교차시켜 보자.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한 쌍의 예술가, 그 예술)가 둘이며 다르다는 의미, 혹은 뒤집어서 다른 둘(그 예술가 각자, 그 둘 각각의 예술)이 하나라는 의미와, 그 쌍에 또 다른 하나(한 비평가, 그 평론)가 더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글쓴이의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위와 같은 점이 중요한가? 이 글은 길게 잡아서 최근 십 년, 짧게 잡으면 약 오륙년 사이 한국 예술계의 화두로 급속히 퍼진 다원예술(interdisciplinary arts), 협업/공동작업(collaboration), 퍼포먼스(performance), 매체(media), 참여(participation), 공유(sharing)를 관통하는 핵심이 ‘관계’에 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예술의 차원에서 그 관계는 여러 존재들을 아주 정교한 셈법으로 더하고 빼며 곱하고 나누는 인식과 실천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 또 거기서는 의식적이고 감각적인 교류 또는 단절, 동의 또는 반목, 협력 또는 교전(交戰)의 방법론을 발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결론을 말하는 우를 범하자면, 융합과 교차, 협력과 나눔, 과정과 그 과정에의 동참을 중시하는 예술이 있다고 할 때, 그 예술은 얼핏 드는 생각과는 달리 철저한 인문의 셈법 속에서 ―현실적 이해타산의 셈법이 아닌― 관계를 생산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부(不)와 정(正)이라는 이분법에 편입되지 않는 무수한 가능성의 지대를 판단/고안해서 움직여야만 감상자에게 보다 진정한 연대와 협력, 다원과 참여를 긍정하는 예술로서 전달될 것이다. 그런 예술의 경우 어떤 계산도 넘어서는 온정적 관계, 어떤 이기주의로부터도 자유로운 관계를 전제하는 데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엘리트주의적 미망이거나 관념화된 말의 꿈이다. 또는 그 순진성 때문에 결국 예술을 구태의연한 자기 지시적 예술 ―예술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고, 문학은 언어를 옹위하며, 미술 또한 자체의 형식 논리로 수렴되는― 로 회귀시키는 덫이다.

 

우리의 두 언어 사이를.

   여기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준과 소설가 한유주의 예술 협업이 문제다. 이들이 쌍을 이뤄 처음 선보인 작품 <도축된 텍스트>에서 주제는 ‘언어’와 ‘텍스트’였다. 가볍게 구분하자면 미술가로서 이준에게 무엇보다 우선하는 관심은 ‘이미지’이거나 ‘시각적 대상’일 텐데, 그렇다면 첫 주제는 글 쓰는 작가인 한유주의 입장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 분명 그런 의심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다음에 인용하는 두 작가의 <도축된 텍스트> 관련 노트는 우리의 그 같은 발 빠른 질문이 이미 우리 안에 상투화된 예술 장르 개념과 그에 선행하는 이분법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일깨운다. 이를테면 문학과 미술이라는 개별 장르, 그리고 문학인 것 대(對) 그것이 아닌 것 또는 미술인 것 대 그것이 아닌 것.

 

“우리는 이 작업[<도축된 텍스트>]에서 언어의 살을 켜켜이 발라내어, 그 살점들을 포장하고 운반하고, 열을 가하는 따위의 조리과정을 거쳐, 거대한 덩어리의 언어가 하나의 텍스트로 우리 앞에 당도하게 되는 과정을 맛보게 될 것이다.”1)

 

   위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언어를 독해하는 동시에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선 언어로 쓰인 그 문장이 독해의 과정을 통해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야한다. 가령 “언어의 살”이 무엇인가? 언어에 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발라내”지는가? 언어에 살이 있다거나 그 살을 발라낸다는 것도 불가해한데, 우리가 어떻게 그 살점들이 “포장” “운반” “조리과정”을 거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주 많이 양보해서 문학의 은유법을 통해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거대한 덩어리의 언어가 하나의 텍스트”가 되는 과정을 우리가 어찌 “맛보게 될 것”인가? 이렇게 논리적으로 위 인용문을 따질 경우 우리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아무 답도 얻지 못한 채, 헤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그 문장들을 읽으며 그 이해 불능인 “언어의 살”을 어떤 형태로든 ‘구상(具象)’한다. 뒤이어 그것들이 마치 고깃덩어리인양 해체된 후 여러 공정을 거쳐 우리 앞에 전달되는 일련의 사건을 ‘가상적으로’ 시각화한다. 작품 <도축된 텍스트>는 사실 바로 이와 같이 연동하고 공조(共助)하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드러내려 했던 것 같다. 나아가 그 둘에 설정된 기존 관념/예술 개념의 틀을 넘어 양자가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두 언어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가 충족되지 않는 결여를 가진 불완전한 언어들로서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상황, 그 관계의 결을 추출해내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도축된 텍스트>는 한유주가 쓴 「도축된, 도축될, 도축되지 않을」이라는 단편소설(?)과 이준의 미디어 아트 프로그램(?)이 상호 교환과 증여, 상호 개입과 참여를 창작 방법론이자 협업의 기술로 삼아 만들어낸 다원적인 성향의 작품이다. 먼저 한유주의 소설은 내용상 “하나의 언어가 도축되는 풍경”을 보고 싶어 하는 “내”가 이러저러한 음식과 이러저러한 단어들을 모티프로 문장을 써나가는 특이한 이야기 ―라고 쓰나, 사실 그 소설에는 내러티브라 할 만 것이 없다― 이다. 하지만 정작 그 소설 자체가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을 이용한 글쓰기(automatic writing)처럼 기표로부터 기의를 떼어내고, 문맥을 파편화하고, 언어유희(wordplay)와 단어의 우발적 연쇄를 통해 문장의 합리성을 분쇄하는 ‘언어 도축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용이 곧 표상 형식이 된 실험 문학이다. 예컨대 그 글에는 “니은이 빠져 있는 불안. 혹은 ㄴ 이 빠져 있는 불안.” 이나 “기억나지 않았다. 이스트를 잊었다면 웨스트를.” 또는 “먹다라는 동사가 먹히다라는 동사에 먹히는 동안” 등등의 문장이 난무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준은 단적으로 말하면 컴퓨터를 이용해 디지털 테크놀로지 기반의 영상과 사운드를 만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업이 단지 기술의 실현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갖도록 시간, 공간, 사물, 존재, 사건을 미디어의 조건 및 역량에 결부시켜 해석하고 지각 가능한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다. 예를 들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 어떤 사물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을 그 강도(强度)에 따라 실시간 이미지와 사운드로 변환하고, 지면에 붙박인 활자들을 시간이미지로서의 영상에 이행시켜 물질과 비물질, 공간과 시간의 질서를 교환하고 재편하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각각인 둘의 예술은 어떻게 <도축된 텍스트>가 됐는가? 두 작가는 한 쌍으로서 소설-텍스트를 공유하고(혹은 한 쪽이 다른 쪽에게 증여하고), 미디어-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혹은 한 쪽이 만든 표현의 장에 다른 쪽이 편입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영상설치 퍼포먼스를 펼쳤다(여전히 우리는 어떤 명확한 장르 개념도 내놓을 수 없다). 한유주의 단편에서처럼 단어, 문장들은 분절됐으되, 그것들은 종이 위에서가 아니라 깜빡이는 디지털 빛의 표면 위에서 그랬다. ‘언어의 도축’은 말 그대로 묵직한 돼지(모형)에 칼을 꽂아 언어의 살(인터액티브 디자인 기술에 따라 행위자에 반응하는 디지털 활자)을 발라내는 한유주의 행위로 가시화됐다. 그리고 언어의 살이 고기의 살점처럼 썰리고 다른 식재료와 섞여 만두로 빚어지는 과정은, 실제의 물질들(돼지고기, 칼, 도마, 행위자의 신체)과 영상이미지(파편화된 디지털 활자들 및 사운드)라는 이중 구조를 실행하는 한유주+이준 그리고 사운드 디자이너 N2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실이 됐다. 물론 이때의 현실은 작품 제목처럼 적나라한 지각의 수준에서, 언어가 물질과 이미지의 합동 개입을 통해 도축된 텍스트로 전이한 상황이다. 그 상황들 한가운데서 관객은 언어가 살/디지털 빛 입자로 현현하고, 눈과 귀와 코와 피부를 통해 맛보여지는 일련의 실험과정을 무언의 참관인으로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작품 설명 및 평을 읽으며 혹자는 이준+한유주(또는 한유주+이준, 혹은 그 쌍)의 <도축된 텍스트>는 겉으로는 문학의 중요 테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미디어 아트의 탁월하고 첨단인 이미지 실현 능력에 기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내용 없이 기술만 횡행하는 미디어 아트에 문학이 주제를, 심지어 정신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논평보다 더 적절하고 균형 잡힌 의견은 아마도 그것이 ‘다른 둘이 하나가 된 상태’라고 말하는 데 있을 것이다. 즉 <도축된 텍스트>는 문학 언어와 미디어 아트의 언어가 같이 작동해서, 두 다른 언어의 사이를 왕복 횡단하면 있는/있을 수 있는 다종다양한 ‘언어 지각의 풍경’ 중 어느 장(場/章)을 펼쳐내려 했다고 말이다. 이렇게 행해진 <도축된 텍스트>를 우리는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용어를 빌려 “대화적 예술(conversational art)”2) 이라 부를 수도 있겠고, 21세기 들어 부쩍 예술계의 유행어가 된 ‘다원예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여전히 개인/개별 장르를 따진 이후에 그것들을 단순 덧셈하는 식으로 예술을 수행하고 논하는 한, 그런 예술에 대한 어떤 용어도 아직은 과잉이거나 부실한 것 같다.

 

관계의 셈법, 생산의 사유

   한 명의 비평가로서 나는 위에서 <도축된 텍스트>에 대한 평을 썼다. 그러니 이 글에서 명시적으로 우리(다른 둘의 하나, 그리고 하나)는 셋이 아니라, ‘예술작품’과 ‘그에 대한 비평’이라는 둘의 관계에 있다. 산수의 공식에서 (1+1)+1=3이다. 하지만 협업과 공유를 강조하는 어떤 예술의 경우 여기 (1+1)의 이상적 답은 2가 아니라 1이거나 공유 가능한 만큼의 다수(多數)다. 그러니 우선 그런 예술과 그 비평의 관계는 이자(二者) 관계에 머물 것이며, 그것이 셋 이상이 되는 지점은 그 예술과 비평이 누군가들과 관계를 맺어 그들에 의해 각자의 감각과 사유로 구체화되는 데 있지 않은가. 이 복잡한 인문학적 수식을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다음과 같이 문장화했다.

 

“쌍은 둘이지만, 쌍을 하나에 더한다고 해서 셋이 되는 것은 아니다. 쌍을 하나에 더해도, 나오는 것은 여전히 둘, 하나 다음의 다른 것인 둘이다. 오직 머리만이 셋을 만들 수 있다. 셋은 사유이다.”3)

 

   바디우는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후기작인 『가장 나쁜 쪽으로』를 비평적으로 분석하면서 위와 같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의 드러남(“존재 안에 새겨진 것”)으로서 “하나”와 “쌍”, 그리고 사유로서의 “셋”을 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디우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베케트 문학의 개념적 테마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쌍”과 “셋”의 의미 및 관계에 집중하기로 하자. 그에 따르면 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것” 또는 타자인데, 쌍에서의 다른 것은 그것이 이미 둘의 관계 안에 있다는 점에서 “내적 이중성”이다. 여기에 다른 하나가 더해진다. 그러면 셋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결과는 내적 이중성을 가진 하나와 다른 하나, 이렇게 둘이다.


   이를 앞서 썼듯이 한유주+이준이라는 쌍의 예술과 강수미의 비평이라는 하나에 대입해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기서 역으로 추출해낼 수 있는 관계란 먼저 다른 둘로서의 한유주와 이준의 관계가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이제까지 <도축된 텍스트>에서 논했듯이 공동 작업을 통해 어떤 예술적 성과를 낸다는 목적 아래서 때로는 자신의 일부(작품, 시간, 예술 노동)를 상대방에게 제공하기도 하고, 의견의 다름으로 충돌하기도 하면서 묶인 관계다. 그렇지만 둘은 여전히 쌍으로 묶여 있으므로 우리는 그 관계에 ‘내적 이중성을 가진 하나’ 혹은 ‘하나의 괄호 안에 있는 둘’이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 하나가 결코 조화로운 총체성의 이상적 하나가 아니라는 점, 그 괄호 안의 존재의 이중성이 고정되고 폐쇄적인 관계가 아니라 임의적이고 긴장감 있는 관계를 유발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한편, 비평은 그 괄호 바깥에서 또 다른 하나로서 쌍의 예술과 관계 한다. 이때 비평은 어느 대목에서는 한유주에, 다른 대목에서는 이준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또는 어느 부분에서는 문학을, 다른 부분에서는 현대미술을 비평의 척도로 삼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것들을 각자로 파편화시킬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니 비유하자면 비평은 공동작품이라는 괄호 밖에서 부단히 괄호 안의 요소들에 분석의 화살표를 그어 관계를 다변화하는 것 같아도 이미 항상 그 행위/관계는 괄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작품과 비평, 이들의 관계는 여전히 둘 이상을 생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둘 이상의 관계, 둘 이상의 의미, 둘 이상의 가치는 누가/어디서 생산하는가? 바디우 식으로 답하면 ‘사유’가 답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공동작품과 비평 양자를 공통으로 접하면서, 그러나 결코 익숙하게 규정된 감상법/독해법으로 그 둘과 관계 맺는 데 만족하지 않고 관계의 방법을 발명해가는 감상자/관객 각자가 자신의 지각경험을 하고 자기의 생각을 펼치는 일이다. 그것이 말의 확장된 의미에서 ‘창조적 비평(creative critic)’이다.

 

예컨대 ‘보안’과 ‘여관’의 유혹

   예술작품이 감상자/관객과 대화한다는 식의 논리는 미학의 오래된 전제이지만, 사실 그때의 대화는 많은 경우 완성된 미적 대상에 대한 감상자/관객의 수동적 반응에 머문다. 본다. 듣는다. 맛본다. 느낀다. 감동한다. 이런 미학적 반응은 사실 어떤 예술작품에 내재된 미적 질(quality), 가치 등을 그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감상자/관객(벌써 이런 용어 자체가 가정하듯이)이 인정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지시하는 중립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 과정에서는 예를 들어 한 점의 추상화에는 현실의 조악한 구체성을 넘어서는 고도의 추상적 미 ―형식의 아름다움부터 정신적 숭고까지― 가 있다고 전제하고, 감상자는 그 미를 지각해야만 작품과의 대화에 성공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현대예술은 위와 같은 미학적 전제부터 의심하며, 동시에 감상자/관객과의 관계를 그 이론적 틀에 한정시키려 하지 않는다. 퍼뜩 떠오르는 예만 들어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레디메이드를 통해서 미술작품이 작가의 천재성과 예술적 의도를 담은 일종의 용기(container)라는 조형예술 관념을 깨뜨리고 작품이란 맥락과 상황의 산물임을 노출시키지 않았는가. 존 케이지(John Cage)는 실제 시간과 공간 속 소음과 침묵을 음악으로 인지시킴으로써 청중을 콘서트홀의 유령이 아니라 현실 삶의 유경험자로 돌려놓았지 않은가. 이제는 예술사의 고전에 속하는 이런 예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새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 아트, 사회 참여 예술, 다원예술 등으로 이어지는 여타 현대예술의 스펙트럼에서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바뀌는 만큼이나 미적 속성 및 감상자의 존재와 역할이 다변화했다. 물론 그런 이행과 변화의 경로에서 작품과 감상자의 관계 맺기의 양태 또한 지속적으로 새로워지거나 개선되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 관념론미학과 유미주의 예술의 토대 위에서 정의된 예술, 그리고 그에 대한 수용은 더 이상 그 보수적 경계를 지킬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지금 여기의 예술, 감상자의 반응, 그리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관계들은 마치 플랫폼처럼, 마치 유목민/뜨내기의 방랑처럼, 그리고 마치 디지털 세계의 하이퍼링크처럼 이뤄진다.

   이즈음에서 나는 작품을 논리적으로 대리하지도 않고, 작품의 내적 요소를 묘사하는 것도 아닌 비평으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비평의 대상은 한유주+이준의 <보안여관: 술화(述話)의 물화(物話)>다. 이 작품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1930년대 어느 때부터 2004년까지 약 80여 년간 여관으로 운영됐고, 이후 대안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보안여관’을 중심으로 한 한유주+이준의 장소 특정적 작업(site specific work)이다. 작품은 한유주가 이 여관에 얽힌 이상(李霜)의 에피소드에 영감을 얻어 쓴 돼지 남편과 거미 여인의 이야기/소설 ―「시회지주(豕會蜘鼄): 돼지가 거미를 만나다」와 「광녀(狂女)의 낭보(朗報)」― 을 바탕에 깔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안여관...>은 한유주와 이준이 현실 공간의 건축물이자 역사를 품고 있는 특정 장소,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그 여관 아닌 여관/대안공간의 조건들에 즉자적으로/계획적으로 반응하면서 만들어낸 한시적 작업이라는 점에서 장소-시간 특정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전시가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그 작품의 면면을 몇 장의 사진과 글로 역 추적할 수밖에 없는데, 가령 다음과 같은 것이다. 

   키 낮은 2층 여관 건물의 전면에는 원래 5개의 창이 있다. 여기에 한유주+이준은 소설의 몇 대목을 영상이미지로 연출해 투사했다. 어느 창에는 돼지머리를 한 남자의 그림자가 비치고, 또 다른 창으로는 거미처럼 가냘픈 몸매의 한 여인이 전화를 받는지 거는지 확실치 않은 포즈로 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관/전시장 내부로 들어가면 1930년대 일정강점기나 1960년대 개발시대, 그도 아니면 지금 여기 도시 뒷골목의 어느 여관, 어느 방 풍취에 근접하는 상태로 꾸며진 실내를 경험한다. 하지만 사실 <보안여관...>은 그런 노스탤지어의 재현과는 거리가 먼 작품인데, 왜냐하면 거기에는 우울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물들 위로 컴퓨터로 정교하게 디자인된 가상이미지들이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소설 속에서 거미 아내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돼지 남편이 끊임없이 “세시 오십구 분”으로 시간을 맞추고 싶어 하는 벽시계는 우리가 흔히 보는 검은 프레임의 원형 시계지만 그 위에서 시간은 디지털 영상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이러한 연출, 설치, 사물과 이미지의 세공은 흥미롭다. 

   하지만, 비평가로서 내가 더 주목하는 <보안여관...>의 단면은 당시 감상자(라 할 수 있는 이를 이 작업에서 특정하기는 어려워도)가 그 곳/작품에 보인 반응이다. 전시 기간 동안, 통의동 길가에 위치한 대안공간 보안여관을 지나치는 사람들 중 몇몇은 밤이 되면 노란 불빛을 배경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흔들거리는 그 여관 창문에 부나방처럼 날아들었다. 우선은 돼지머리나 거미 몸의 그림자 형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다음에는 좀 더 자세히 보기/듣기 위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 나름대로 실체를 해석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용기를 내 여관/전시장 내부로 들어섰고, 자의반 타의반 <보안여관...>을 감상했다. 건물의 물리적 특성상 다소간 폐쇄적인 공기가 흐르고, 실제의 물건과 디지털 가상이미지가 혼란스럽게 얽혀 다소간 두려움과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그 전시를 직접 경험했던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어떤 미적 경험을 했는지 지금 여기서 비평을 하고 있는 나는 알지 못한다. 또 심지어 그 사람들을 감상자라 부를 만한 무엇을 <보안여관...>이 제공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예측하건대, 그때 그 곳에서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했을 것이고, 그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안여관...>은 전통적 의미의 예술이 순수예술 이념과 장르의 틀 속에서 ‘보안(保安)’하고자 했던 미적 규범들을 바깥으로 떠돌게 했다. 아니면 그런 규범들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은 순간, 질감, 뉘앙스, 외관들을 통해 작품과 감상자의 관계를 일시적이지만 다원적인 양태로 생산해냈다. 마치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관의 양상처럼. 낯선 곳의 뜨내기들이 정체 모를 여관과 맺는 관계, 나는 이런 관계의 면모 속에서 대화적이고 다원적인 예술의 유혹적인 진면모를 발견/발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주)
1) 한유주+이준, 「도축된 텍스트」, 2009. 11. 21 서울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선보인 동명의 퍼포먼스 소개 자료에서 인용.
2) Homi K. Bhabha, “Conversational Art,” Conversations at the Castle: Changing Audiences and Contemporary Art, Mary Jane Jacobs & Michael Brenson (eds.), Cambridge: MIT Press, 1998, pp. 38-47.
3) Alain Badiou, Petit manuel d'inesthétique, 장태순 역, 『비미학』, 서울: 이학사, 2010, p. 177.


강수미 (미학/미술평론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인문예술잡지 F>, 문지문화원 사이, 2011, 3호, pp. 7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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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불가능한 지금 여기: 현대미술의 장소 특정성 art und weise


Christian Philipp Müller, Illegal Border Crossing between Austria and Czechoslovakia, Austrian contribution to the Venice Biennale, 1993. (photo courtesy the artist.)


배영환, <이별의 편지>, 문화역서울 284 설치 전경, 2011.





반복 불가능한 지금 여기: 현대미술의 장소 특정성

 

강수미 (미학,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1993년 어느 날 스위스 출신의 미술가 크리스티안 필립 뮐러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사이의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다가 체포돼 이후 3년 동안 체코 재입국 금지라는 처벌을 받는다. 언뜻 정치적 사안으로 들리는 이 일은 그러나 사실 현대미술 작품이다. 즉 뮐러라는 한 인물이 은밀히 국경을 건너다 발각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에게 제재가 가해진 사건이 아니라, 한 작가가 예술적 의도를 가지고 양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는 행위를 감행하고 그것을 작품이라고 제시한 현대미술인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과거 동구권 국가인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와 서구권 국가인 이태리,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독일 사이의 국경이 민족주의(nationalism)의 장벽으로 기능하는 양상을 탐사”하고자 그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런데 이 행위미술은 그저 사적이고 즉흥적인 조건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뮐러는 1993년 45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오스트리아 국가관에 초대된 ‘국외’ 작가였고, 당시 그 국가관의 커미셔너였던 페터 바이벨의 요청에 따라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그 ‘불법 국경 횡단 작업’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1895년 창설된 이래로 베니스비엔날레가 “고수해온 원칙, 즉 국가들 간에 예술을 경쟁하는 전통”을 내셔널리즘의 한 기제라고 봤다. 그리고 그런 전통을 깨고자 바이벨은 오스트리아의 미술을 대표하는/해야 할 국가관 전시에 일부러 자국작가와 외국작가의 협업을 제안했고, 그에 입각해 스위스 작가 뮐러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개시한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은 역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특정한 의미 ․ 기능 ․ 제도적 속성을 가진 국경이라는 장소에서 일시적으로 벌인 뮐러의 위반행위이다.1) 미술이론 및 비평 영역에서는 이를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로 정의한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조형적이지도 않고, 미적 오브제로 남기도 어려우며,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 휘발되는 미술, 나아가 일정한 사회성과 정치성을 지향하는 미술이 동시대 진보적인 미술의 주류 경향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장소 특정적 미술의 작은 역사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장소 특정적 미술의 역사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즈음 서구,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일군의 작가들은 모더니즘 미술의 자율성, 순수성, 자기 지시성, 그리고 오브제 중심을 비판하면서 “방해든 동화든 환경의 맥락에 그 자체를 내맡겨 그 맥락에 의해 형식이 결정되고 지배되는”2) 미술을 실험하는데, 그것이 바로 장소 특정적 미술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세기 초중반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술비평이 대변하는 모더니즘 미술의 논리는 문학이나 연극 같은 다른 예술과의 장르상 경계를 엄수하는 것은 물론, 대중문화 또는 여타 사회 영역과의 위계적 분리를 정언명령 화했다. 그런 맥락에서 미술, 그리고 그 내부의 회화와 조각은 자기비판을 통해 각자의 진정성을 극단적으로 순수하게 추구해야만 한다는 논법이 성립했다. 또 그 비판과정과 진정성 확보를 위한 방법론으로, 이를테면 미술은 미술 자체만을, 회화는 회화 자체의 속성으로서 평면성만을 견지해야 한다는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 기제가 설득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더니즘 미술 패러다임은 미술을 사회 및 대중의 삶으로부터 유리시켰고, 동시에 그 동어반복의 미술 질서 이면에서 정작 작품은 제반 환경에 상관없이 전시되고 자본주의 미술시장에서 사고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그 반작용으로 마이클 애셔, 한스 하케, 다니엘 뷔랑, 로버트 스미슨 같은 개념미술가 또는 대지미술가들은 미술 창작에서 ‘장소’를 핵심적인 조건으로 상정했으며, 그와 결부된 여러 다양한 실천을 미술로서 형식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들이 문제시한 장소란 단지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지반만이 아니라 특정 장소에 얽힌 역사 ․ 관습 ․ 문화 ․ 인식 ․ 제도 ․ 사건 ․ 현실을 포괄했고, 작가들은 각자의 방향과 세부 형식을 고안하여 기존의 장소에 개입하거나 불충분한 지점을 드러내고 보강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서두에 소개한 뮐러의 <오스트리아와 체코 사이 국경을 불법으로 넘기>에서 알 수 있듯이, 대체로 이 장소 특정적 미술은 비판적/비평적 문맥이 강하다. 동시에 특정한 공간에 일시적이고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성향을 띠기 때문에, 조형예술작품으로서의 견고성이나 지속성은 기대하기 힘든 특징을 갖는다. 요컨대 유미주의 미학으로 따지면 장소 특정적 미술은 특별한 미적 특질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시간적으로 덧없고 양식상 유동적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앞서 장소 특정적 미술이 진보적인 현대미술의 주류 경향 중 하나라 했는데, 왜 그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부질없으며 불안정한 형식의 미술이 각광받는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다. 이하에서 우리는 최근 국내 한 특정 장소에서 열린 전시를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

 

원형복원의 새로움, 현재화의 잔존물

   일제강점기인 1925년 준공된 이후 서울 용산에서 80여 년간 대한민국 전 지역의 중앙역 역할을 담당했던 구(舊) 서울역사가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것은 지난 2009년 7월의 일이다. 곧이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 아래 3년여의 “서울역 원형복원” 공사가 진행됐고, 올 8월 초에 그 일이 일단락돼 공식 개관을 하면서 일반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되돌려진/새로운’ 옛 서울역을 접할 수 있었다. 정책 당국이 근대 서울역의 준공시기를 기준으로 삼아 “원형복원”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되돌려진 옛 서울역이라면, 동시에 그 정책 당국이 서울역을 더 이상 기차 역사(驛舍)로서가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옛 서울역인 것이다. ‘문화역서울 284’가 그 새 이름인데, 공식 발표에 따르면 그 이름에는 “문화공간+역사, 공간, 도시적 상징성+구 서울역 사적(史蹟) 번호”가 구성 요소로 담겨있다. 이렇듯 관계기관의 역사에 대한 의식적 존중이 그 명칭에 새겨져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그곳은 한국 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이 5년간 위탁 운영을 맡아 2012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럼 8월의 공식 개관과 내년 3월의 공식 운영 사이에 비어있는 시간은 어떻게 할까? 문화체육관광부는 외부 전시기획자에게 위임해 <카운트다운>이라는 개관기념 프로젝트를 꾸렸다. 이 프로젝트는 35명의 한국 현대 미술가들이 ‘구 서울역’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창작한 작품들을 역 내부와 외부 공간에서 프로젝트가 종결되는 시점까지 점진적으로 선보이는 일종의 진행형 전시가 핵심이다. 물론 기간 중에 인문학 및 디자인을 주제로 한 강연, 인디밴드 공연이 병행되지만 말이다.

   ‘원형복원’인 동시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출범’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껴안고 있는 구 서울역의 오늘, 그리고 <카운트다운> 프로젝트의 전시. 여기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주목하게 되는 사안은 특정 장소, 특정 시간, 거기에 얽혀있는 특정 역사의 경험과 기억들, 미래의 계획이고, 개관기념 현대미술전시의 내용이다. <카운트다운>에는 과거 서울역을 기념하거나 그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작품들도 전시됐고, 반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 장소와 관련 없는 작품들 또한 나왔다. 여기서는 전자의 사례만 들어보자. 배영환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군대를 제대할 때 군 동료로부터 받는 ‘이별의 편지’ 80여 장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과거 입영열차를 운영했던 서울역과 그곳을 거쳐 가고 돌아왔을 무수한 장병 및 가족들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또 이수경은 한국 전통무용가, 전통 복식디자이너, 국악인들과 협업하여 형식상 조각-설치미술-전통무용공연-디자인-퍼포먼스 아트를 가로지르는 작품을 전시 기간 중 총 5회 공연한다. 요컨대 <휘황찬란 교방춤>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서울역의 1925년 첫 개관과 2011년 새로운 개관을 함께 ‘축원’하는 의미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왜곡되고 퇴색한 조선의 전통 기방춤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복원공사 당시 버려진 서울역의 샹들리에를 주워서 무대의 조명으로 썼다는 사실이다. 앞서 우리는 정책 당국이 구 서울역사의 원형복원을 기치로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을 살폈다. 그런데 정작 그 당국은 물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구 서울역의 역사적 잔존물을 폐기처분한 반면, 현대미술가인 이수경은 그것을 거둬들여 작품의 요소로서 재생-보존했다. 이는 단편적 사실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새삼 특정 장소에 결부된 역사와 그것의 현재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원형복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과거의 대상에 존재하는 그 대상의 본질/원형/정체를 그대로 되돌린다는 뜻이 아닌가. 가령 건축물이라면 그 건축물의 전체 외관부터 구조적 속성과 기능까지 회복시킨다는 것이고, 그것이 설립된 때부터 역사적 시간을 겪어온 과정까지를 고스란히 보존해 오늘 여기로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일견 항상 똑같아 보이는 우리 자신, 공간, 심지어 사물도 매순간 존재의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원형복원’이나 ‘역사적 시간의 현재화’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다. 그것은 물질을 그대로 박제한다고 해서, 이미지로 재현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의 물리적이고 의식적인 이행과정에 집중하는 일, 하나의 장소가 생성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전 과정에서 축적된 공적 ․ 사적 경험, 사건, 기억들을 유지시키고 현재의 삶과 관계 맺게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고 현실적인 답일 수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사회 전반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삶의 양상이 복잡다단해지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기술의 비약에 힘입어 더욱 비물질을 향해 가는 상황에서는 그렇다. 현대미술에서 장소 특정적 미술이 주요한 경향으로 부상하고, 많은 작가들이 일시적이고 반복불가능하며 경제적 교환가능성이 희박한 그 미술 ―미술관에 소장되기도 어렵고, 미술시장에서 미적 오브제로 판매되기도 어려운― 을 실천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즉 장소 특정적 미술은 동시대적 삶의 조건 속에서 점차 희박해져 가는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 또 지금 여기의 현실감과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혹은 그것들을 지각 가능하고 성찰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기 위해서 아이러니하지만 한시성과 휘발성의 경로를 택하는 미술인 것이다.


현실감의 초 시공간적 상실과 미술

   1936년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사진 및 영화의 출현과 더불어 영원성과 지속성의 전통예술이 종언을 고하고, 이미지 재생산 기술에 힘입어 일시성과 반복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 시대가 도래했음을 일깨웠다. 1980년 폴 비릴리오는 『소멸의 미학』에서 기계 문명의 고도화 및 고속화를 바탕으로 ‘의식의 공백/부재/중단 상태’를 인공적으로 메우려 해온 인간이, 오히려 오늘날 가속화된 “기계-빛” 앞에서 눈멀고 의식 자체가 소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1998년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실현 능력과 미디어의 급격한 변화로 현실과 가상의 위계적 구분이 깨지고 후자가 더 강력해지는 현상을 환영하면서 『피상성 예찬』에서 말하길, “가상은 현실만큼 실재적이고, 현실은 가상만큼 유령 같아질 것”이라 했다. 약 30~40년의 격차를 두고 나온 이 세 이론들에서 흥미로운 점은, 찬성이든 비판이든 위 세 사람이 기술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지각경험뿐만 아니라 예술 또는 이미지의 속성 및 양상이 크게 변모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예견은 각종 멀티미디어 및 디지털 기기로 중개되는 현실, 원격현전(tele-presence)과 원격소통(tele-communication)의 감각과 인식, 비물질적이고 가상적인 예술의 득세와 더불어 지금 여기서 높은 강도로 들어맞아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소 특정적 미술은 그러한 동시대 상황에서 이중적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한편으로는 조형예술로서 오랜 특권인 물질적 영속성과 초시간성을 버리고 유한하고 세속적으로 구체적인 미술의 길을 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분명 어디에선가 점차 희박해져 가는 역사의식과 현실감을 유지시키려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장소 특정적 미술은 이미 언제나 변화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지금 여기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아 행위하고, 그 행위의 과정들을 멀티미디어 장치를 이용해 이미지로 기록함으로써 현실적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디지털 기술과 글로벌자본주의의 경제논리가 독점적 위세를 떨치는 이 시대에 스펙터클하지도 않고, 소유하기도 쉽지 않은 장소 특정적 미술이 평가받을 지점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1) 이상 뮐러의 작품에 대해서는 다음 웹 사이트를 참고할 수 있다. http://www.christianphilippmueller.net

2) Miwon Kwon, One place after another: 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2004, p. 11.



출처: 강수미, 철학과 현실, 서울: 철학문화연구소, 2011 겨울(91호), pp. 15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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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새해 첫 목소리. 인사





우리 안에는 자신을 보존하려는 강한 욕망이 내재돼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욕망을 스스로 거스르고, 접고, 포기하는 일은 얼마나 큰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내리는 결단이겠습니까? 한 사회가 어떤 이의 존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몰아부치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끔찍한 폭력이자 부도덕한 강압입니다.
그러한 사회적(정치적/행정적/경제적) 폭력에 맞서,
올 한해도 우리 스스로를 참되고, 멋지고, 굳건하게 보존하려는 욕망의 엔진을 부단히 가동합시다.


"신은 인간을 만들어, 모든 다른 동물에게 그랬듯이, 그 안에 강한 자기보존의 욕망을 심어놓으시고, 음식과 빛과 삶의 필수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셨다. 이는 인간이 지상에서 살고 머무르게 하려는 그의 섭리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신의 솜씨가 빚어낸 그토록 진기하고 놀라운 작품이 그 자체의 부주의나 생필품 부족으로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 신은 [...] 감각과 이성에 의거해 [...] 생존에 유용한 것들, 자기보존의 수단으로 주어진 것들을 활용하도록 인간에게 말씀하셨고, (즉) 명하셨다. [...] 인간 안에는 자신의 삶과 존재를 보존하려는 강한 욕망이 신에 의해 행동의 원리로서 자리 잡았다. 그러므로 인간 안에 있는 신의 목소리인 이성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지켜야 한다는 자연의(본성의) 성향을 추구하는 것이 창조자의 의지를 따르는 것임을 가르치고 또 확신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 Locke's Two Treatise of Government, ed. Peter Laslett, part 1, chap 9. p. 223을 Charles Taylor, 이상길 역, <근대의 사회적 상상>, 서울: 이음, 2011, p. 29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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